[철학 쪽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무교양’

입력 2025-03-01 00:34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데모스윤리학’에서 “무교양은 각 주제에 대해 알맞은 논변과 엉뚱한 논변을 구분할 수 없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 주장이 왜 맞고 저 주장이 왜 틀리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면 알맞은 논변과 엉뚱한 논변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맞은 주장은 제시되고 있는 근거가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그 근거가 참인 경우다. 엉뚱한 주장은 제시되는 근거가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거나 그 근거가 참이 아닌 경우다.

엉뚱한 논변이 생각보다 많이 횡행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믿을 만한가 믿을 만하지 않은가, 즉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기보다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답정너라든가 확증편향이라는 말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두 용어 모두 믿고 싶은 주장을 답으로 정해놓고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에만 관심을 가지는 문제를 환기시킨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주장을 믿고 싶어하는가.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편리하게 해주는 주장을 믿고 싶어한다. 그 주장을 받아들일 때 마음이 편해지면 믿고,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마음에 불편한 주장을 들을 때 인간의 뇌는 그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찾는 쪽으로 돌아간다. ‘논리’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지는 것은 뇌의 이러한 1차적 경향성을 거스르는 무의식적 부담 때문이다.

그런데 믿고 싶어서 믿는 경우에도 그 당사자가 스스로 믿고 싶어서 믿는 것임을 의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를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시 내가 단지 믿고 싶을 뿐인 건지는 모르겠는데”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의 대사다. 믿고 싶은 믿음은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에 힘이 세다. 더군다나 세상에는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믿음을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믿음’인 것처럼 보이게 포장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믿고 싶은 믿음을 누군가가 합리적인 믿음인 것처럼 포장해 주면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지지 않은 채 그냥 믿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철학적 태도는 자신이 지금 믿고 싶어서 믿는 건지, 믿을 만한 이유가 있어서 믿는 건지, 자신이 생각한 근거가 정말 참인지를 지속적으로 따지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태도에는 자신이 믿을 만한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참이 아님이 드러나거나 혹은 그 이유가 사실은 믿을 만한 이유가 아니었음이 드러나면 그 믿음을 포기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기존의 믿음의 오류 가능성이 제기될 때 오류 가능성을 검토하는 사람과 기존의 믿음이 오류가 아니라는 근거를 찾는 데 골몰하는 사람. 철학을 하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욕망을 자극하는 믿음이 얼마나 횡행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욕망에 영향을 받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이성이 얼마나 쉽게 욕망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작동하는지를 검토하고 경계하는 것은 이성의 승리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