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입력 2025-03-01 00:31

마침내 큰 추위가 끝났다. 서울은 이번 주부터 기온이 상승하면서 낮에는 영하의 날씨를 벗어났다. 햇빛도 확실히 달라졌다. 거리에 눈부시게 펼쳐지는 햇살 아래를 걷노라면 그 온기를 뚜렷이 체감할 수 있다. 달라진 계절, 이제 봄을 향한 대로가 훤히 뚫렸다.

해마다 봄이 되면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가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 배운 ‘동무 생각’이다. ‘봄이 오면’이나 ‘봄처녀’ 같은 곡도 있는데 유독 이 노래가 자꾸 떠오른다. 지금 다시 악보를 찾아보면 중학교 1학년생이 익히기엔 다소 어려운 곡이었다. 4분의 4박자로 시작했다가 8분의 9박자로 바뀌고 음역 폭도 크다. 변성기가 시작될 무렵 배운 가곡치곤 상당한 수준의 노래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엔 엄정행(테너), 조수미(소프라노)의 영상이 제일 먼저 뜬다.

검정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앳된 중학생들이 음악실에 모여 몇 번 불렀다고 외웠을 리 없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프란츠 리스트 같은 머리를 했던 그 시절 음악 선생님은 답답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셨다. 그러고는 “잘 따라 해라” 하시며 한 마디 한 마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음을 가르쳐주셨다. 중딩들은 리스트 선생님을 따라 열심히 입을 벌렸다. 아마 기말고사 노래 실기 시험까지 치르며 겨우 외웠던 것 같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 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여/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가사 전반에 흐르는 수려한 시적 표현, 청각에서 시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이미지들은 은연중 사춘기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다닌 중학교는 동네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청라 언덕은 아니었지만 봄에는 개나리와 목련, 라일락이 피었고 그 향기는 남중생들의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 동네 사는 하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었다. 등교 시간에 마주친 그들은 남중생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청라(靑蘿) 언덕은 ‘대구 근대화 거리’로 알려진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옆에 있는 90계단의 작은 언덕길이다. 1900년대 미국 선교사들이 이 지역을 매입해 교회와 병원, 신학교를 지었다. 청라라는 이름은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구제일교회와 선교박물관 그리고 청라 언덕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대구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불린다.

동무 생각을 작곡한 박태준(1900~1986) 선생은 청라 언덕 아래 동네에서 태어났다. 미션스쿨인 계성중학교에 다닐 때 근처 신명여중에 다니는 한 여학생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침마다 청라 언덕을 오르며 그 여학생을 쳐다보며 가슴이 뛰었다. 여학생은 얼굴이 예쁜 데다 피부도 백합처럼 희었다고 한다. 그의 짝사랑은 나날이 깊어갔지만 결국 고백 한번 못 한 채 시간은 흘렀고 ‘백합’ 여학생은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이 같은 사연이 노래가 된 것은 박 선생이 마산 창신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시인 이은상(1903~1982) 선생과 이 학교에서 만나면서다. 이 선생은 이런 사연을 듣고 가사를 썼고 박 선생은 곡을 지었다. 그때가 1922년이었다. 4절로 된 곡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노래하며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잔잔히 표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라 노래 전편에는 조국 해방이라는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 그리고 백합 같았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가사의 압권은 마지막 구절이다.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너와 내가, 내가 너와 하나 될 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바람이다. 동무 생각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0년이 넘었다. 언덕이 담쟁이를 만나 청라 언덕이 되고 내가 너를 짝사랑해 노래가 되었듯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이 나라, 갈라진 남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 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