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소롱포의 맛

입력 2025-02-28 00:33

“젓가락으로 슬픔을 들어/ 접시 위에 툭 하고 내려놓는다// 누군가는 후후 불어 먹고/ 누군가는 접시 위에 올려놓은 다음 한참 동안 식혀 먹는// 하얀 만두는 슬픔 같아/ 간장은 짜니까 울음 같고// 그렇게 말한 사람/ 이제 내 앞에 없고// 그와 비슷한 사람이 큰 트렁크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나와 똑같이 국수 하나와 만두 네 조각을 주문하고//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슬픔은 하얀 만두’ 일부·웹진 비유 64호·정재율)

어떤 관계는 함께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되곤 한다. 친구와 대만 여행을 갔을 때 처음으로 ‘소롱포’를 먹었다. 걷다가 지쳐 별다른 정보 없이 간판만 보고 들어간 곳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꽤 유명한 식당이었다. 기름진 음식에 비위가 덧나, 때마침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나는 메뉴판에 붙은 안내문대로 따라 했다. 젓가락으로 만두피에 조그만 구멍을 냈다. 만두피가 풍선껌만큼이나 얇았다. 만두피가 벌어지고 오목한 숟가락에 뜨거운 육즙이 고여 들었다. 혀를 데지 않도록 육즙을 호로록 마신 뒤, 가늘게 채 썬 생강을 식초 간장에 찍어 먹었다. 소롱포는 작은 대나무 찜통(蒸籠)에 쪄낸 만두라는 뜻이라 했던가. 동그란 대나무 찜통 안에 옹기종기 들어있는 만두. 마치 조그만 보자기를 묶어 놓은 듯, 일정한 간격으로 주름 잡힌 모양이 귀여웠다.

그 후에도 가끔 소롱포를 먹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연스레 그 친구를 떠올렸다. 그때 우리는 하나 남은 만두를 서로 먹으라고 양보하느라 남겨 두었던가? 나이가 드는 건지, 친밀했던 사이가 멀어졌다고 해서 예전처럼 섭섭한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저 계절이 바뀌듯 관계라는 흐름에 감정이 자연스레 실려 가도록 맡겨둔다. 그래도 이제는 소원해진 그 친구와 보냈던 한 시절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조금은 쓸쓸한 일. 하나 남은 만두를 입에 쏙 집어넣는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