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꽃들은
어느 땅에 묻혀 있을까
아름다운 것들이 죽어서 이름이 없어진
잃어버린 시절의 흔적을 감추는 겨울 흙
작은 씨앗의 뿌리는 죽은 이름을 먹고 자라나
푸르러질 준비를 하고
바람은 속삭이지, 네 차례야
그러면 낡은 땅에서 새 풀이, 늙은 가지에 연한 잎이
다시 낡아질 줄 알면서도 한철 마음껏 돋아나
우리는 그것들을 신록이라고 부르지
어차피 역사란 그런 것
죽은 이름이 산 이름을 기르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한 눈부신 봄날
문득 스치는 바람으로 옛 냄새를 기억하는 것
언 땅을 뚫고 끝내 피고야 마는 꽃들을
쓰다듬는 바람, 입술을 적시는 빗방울
젖은 노래들이 하염없이 계속되는 메들리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깊어지면
찰나의 빛을 품은 침묵이 땅에 묻히고
서리가 내리고 눈이 쌓여 한동안 고요해져도
정녕 끝나지는 않는 그런 노래를,
우리는 봄이라고 부르지
-김지윤 시집 ‘피로의 필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