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처럼 ‘신앙은 있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는 한국교회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약 27%가 가나안 성도다. 연령대별로는 20대의 45%, 30대의 35%, 40대의 36%가 교회 밖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과거 청년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던 현상이 30~40대로 확산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제도적 틀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큰 것이 원인”이라며 “신앙을 개인적으로 실천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3040세대는 직장과 육아 등 현실적인 이유로 신앙생활이 소극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교회 안 교회’로 3040 공략
이런 변화에 맞춰 가나안 성도를 다시 끌어안기 위한 한국교회 내 사역도 다양화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우이중앙교회(윤용현 목사)에 있는 ‘로뎀교회’가 대표적이다. 로뎀교회는 3040세대를 위한 맞춤형 부서로, 직장과 육아로 바쁜 이들의 특성을 고려해 교회 안 작은 교회 형태로 운영된다. 부서를 담당하는 정지호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3040 성도가 가장 많이 교회를 떠났다”며 “수직적인 구조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가정을 키워드로 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철저한 아이 돌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후 2시 예배와 소그룹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영어학교와 놀이학교를 각각 1시간씩 운영해 부모들이 온전히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3040세대 수련회도 따로 가는데 청년 성도가 돌봄 도우미가 돼 함께한다. 오는 11월에는 지역 내에 있는 3040 가나안 성도를 위한 집회도 계획하고 있다.
온라인서 신앙고민 소통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진 가나안 성도를 위해 온라인 신앙공동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교회도 있다. 2021년부터 온라인 디아스포라 사역 ‘더오다(The ODA, The Online DiAspora)’를 진행해 온 경기도 김포 이름없는교회(백성훈 목사)는 지난해부터는 가나안 성도들의 신앙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라디오 형식의 신앙 토크 프로그램 ‘더오다 라이브’를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주변의 가나안 성도를 전도하는 ‘등잔 밑 한 영혼 챌린지’도 진행하려 한다. 가나안 성도에게 40일간 기도문과 메시지를 전달한 후 ‘다시말씀집회’로 초대하는 방식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더오다 토론회’ 등 자유롭게 신앙에 대해 묻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왔다. 기존 교회의 주입식 신앙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로도 이어졌다. 현재 이 교회 교인의 40%가 가나안 성도였다가 정착한 이들이다. 백성훈 목사는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신앙적 고민을 나눌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교회가 다시 오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그들의 필요를 듣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삶 속에서 동행하는 신앙
수원시 영통에 있는 소망을노래하는교회(정우준 목사)도 출석 교인의 절반 이상이 가나안 성도 출신이다. 개척 당시 목회자 가정뿐이었다가 4년 만에 80명 규모 공동체로 성장한 이 교회는 주일 성수보다 신앙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주일 예배 참석이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교회가 직접 삶 속으로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가나안 성도들과 함께 식사하거나 산책하며 신앙적 고민을 나누는 것이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나안 성도였던 한 청년은 이 교회에서 배우자를 만나 교회 도움으로 예배당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가나안 성도들과 함께하는 ‘예배자들의 여행’ 프로젝트도 2022년 일본을 시작으로 제주도 등에서 네 차례 진행했다. 기존 교회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신앙과 공동체의 의미를 되찾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도였다. 정우준 목사는 “예배 출석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회복되는 것이 목표였다”며 “교회는 예배당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신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동행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쉼과 묵상, 신앙 회복을 돕다
서울 강동구 바꾸는교회(문종성 목사)는 개척 2년 차인 미자립교회지만 “예수님 안에서 다시 회복하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을 환대한다”는 비전을 갖고 가나안 성도의 신앙 회복을 위한 비전트립을 추진하고 있다. 사역 봉사가 아닌 쉼과 묵상에 초점을 맞춘 비전트립이다.
지난해 가나안 성도 등 10여명과 함께 목포 기독교 역사유적지를 방문하고 신안 섬티아고를 탐방한 것이 첫 프로젝트였다. 올해는 해외 비전트립을 준비 중이다. 오는 7월 일본 시코쿠 다카마쓰 지역을 방문해 현지 일본인 교회에서 머물며 선교사의 사역 이야기를 듣고 낮에는 여행, 밤에는 삶을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문종성 목사는 “교회 소속 여부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여행으로 벌써 많은 지방 성도와 가나안 성도들이 지원했다”며 “여행이라는 유연한 상황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의 정체성, 신앙과 세상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 속 가나안 성도 찾기
지역사회 위기 가정·청소년을 상담하며 ‘세상 속 가나안 성도’를 발굴하고 이들의 신앙 성장을 돕는 이들도 있다. 교육청과 협업해 지역사회 위기 청소년 지원 사업을 7년째 이어오는 비영리 민간단체 미담의 김동영 대표가 그렇다. 바람길교회 목사이기도 한 김 대표는 “대화법 강의나 부모 상담 등 교육 과정 자체엔 종교색이 전혀 없지만, 쉬는 시간 등에 개인사를 나누다 복음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종종 있다”며 “이러한 요청으로 지금껏 30가정을 지역 교회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미담은 현재 경기도 내 15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이 중 7개 지부는 지역 교회 목회자가 운영하고 있다.
세분화된 세상, 사역도 맞춤하게
김 대표는 교회 밖에 있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한 사역을 꿈꾸는 목회자들을 향해 “사역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은 교회 개척도 교회 부흥도 아닌 사역 개척 시대”라며 “다양한 형태의 사역에 도전해 세상과 소통하며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이들이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재영 교수도 “현대 사회가 점점 더 세분화하고 개인화되는 흐름 속에서 교회 역시 획일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맞춤형 사역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인들의 연령과 신앙 유형, 관심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역이 필요하다”며 “통성기도회만이 아니라 묵상 중심의 기도회도 제공하고, 대중 집회뿐만 아니라 소그룹 성경공부나 동호회 활동같이 다채로운 신앙공동체를 제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수연 신은정 양민경 박효진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