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연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를 쓴 작가의 첫 에세이다. 대학생이던 작가가 2008년 교환학생으로 갔던 핀란드. 거기서 만난 친구 ‘예진’과 15년 만에 다시 열흘간 핀란드를 찾는 ‘리유니온’ 여행기다. 사실 ‘여행기’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주인공 ‘류진’과 ‘예진’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연이 등장하는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소설에서 보여줬던 작가 특유의 젠체하지 않는 담백하고 ‘리얼’한 문체도 매력적이다. 책의 프롤로그인 짧은 소설 ‘치유의 감자’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여행기가 아님을 예고하는 듯하다. 작가도 후기에서 말한다. “나는 원고를 ‘에세이’ 폴더가 아닌 ‘소설’ 폴더에 넣고 작업했다. 그러자 막혀있던 많은 것들이 풀렸다. 내가 잘 아는 장소를 배경으로, 내가 잘 아는 캐릭터들을 세워 내가 잘 아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써 내려 갔다.”
작가에게 핀란드는 우연히 찾아왔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 선발 시스템이 ‘손가락을 내리찍듯’ 선택해 준 나라가 핀란드였다.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이 심적으로 힘들어 어디든 떠나고 싶어, 세계지도를 펼쳐 무작정 손으로 짚어 선택된 곳이 핀란드였듯 말이다. 어쩌면 핀란드는 운명일지도 몰랐다. 작가가 사랑한 ‘무민’의 토베 얀손도 핀란드 사람이었고, 작가가 좋아하는 사우나의 원조도 핀란드였다. 그런 핀란드에서 운명의 친구 ‘예진’을 만난 것도 작가에게는 행운이었다.
15년 전 류진은 사회과학대, 예진은 공대 학생이었다. 2023년, 한 명은 전업 작가로, 한 명은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각자의 삶을 꾸려가던 어느 날 두 사람은 ‘그들이 반짝이는 계절’을 찾아 다시 여행을 떠난다. 단지 6개월만 살았을 뿐인데 두 사람은 핀란드를 그리워했다. 그리움의 원천이자 교환학생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쿠오피오를 먼저 찾는다. 두 번째는 도시 탐페레. 작가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수록된 ‘탐페레 공항’의 배경인 곳이다. 사실 작가는 탐페레 공항을 가본 적이 없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예진이 전해 준 탐페레 공항 이야기를 소재로, 구글 지도로 내외부를 확인하고 상상력을 곁들여 작품을 완성했다.
마지막은 헬싱키. 문화센터에 다니며 취미로 쓰던 소설에 욕심이 생겨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10년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스스로에게 선물한 1년이 마무리될 무렵 찾은 곳이다. 여행을 마치고 새 회사에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신인소설상에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
소설 같다고 했지만 그래도 여행 이야기다. 읽고 나서 핀란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것도 아주 훌륭한 여행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원두 소비량 세계 1위인 ‘의외의’ 커피의 나라가 핀란드다. 줄을 서더라도 1m 간격을 두고 서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개인주의자’들이 핀란드 사람들이다. 누구나 소유주의 허가 없이도 야생 열매, 버섯, 꽃을 채집할 수 있고, 어디서든 야영을 할 수가 있는 ‘만인의 권리’가 보장된 신뢰 사회가 핀란드다.
무엇보다 친구의 이야기다. 작가도 “원고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 문득, 이 책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구나, 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말한다. 작가는 첫 소설집의 초판본을 구매해 여행 마지막에 다시 사인을 요청하는 친구, 신간이 처음 나오고 온라인 서점 악성 댓글에 다는 사람에게 응징을 해주는 친구 이야기도 전한다. 그들은 언제나 “내가 나여서 나를 아끼고 좋아해 주는” “내 뒷배, 내 비빌 언덕, 내 마음의 포근한 소파”다. 덤으로 책에 나오는, 멀어진 가족 이야기나 작품에 얽힌 일화 등을 통해 작가 장류진의 속살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