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가수 황가람이 부른 ‘나는 반딧불’ 가사 일부다. ‘나는 반딧불’은 2020년 발표한 밴드 중식이의 원곡을 황가람이 리메이크한 것으로 자신을 ‘빛나는 별’이라 믿었던 개똥벌레가 그저 작은 벌레였음을 깨달으면서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빛나겠다는 독백이 담겨 있다. 가사가 주는 위로와 공감의 힘 덕분일까. 이 곡은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국민 위로송’으로 등극하며 지난겨울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작은 개똥벌레 같았던 무명가수 황가람이 ‘나는 반딧불’ 노래를 통해 빛나는 별로 주목받게 된 인생 역전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감동은 더욱 커졌다.
가수를 꿈꾸며 무작정 서울에 올라온 그는 교회와 홍대 공원 벤치를 전전하며 노숙 생활을 했다. 추운 겨울에는 찜질방 옥상 굴뚝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을 의지해 상자를 깔고 잠을 자거나 라디에이터가 켜진 화장실에서 밤을 보냈다. 호떡 장사부터 신약 임상실험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생계를 이어왔던 그는 수많은 역경을 겪었다. 그런 그가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꿈에 다다른 사연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 깊은 울림을 줬다.
요즘 나도 이 노래가 내게 건네는 위로 같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있다. 집 안에서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는 나를 볼 때면 남편은 짧은 탄식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쉰다.
매번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개똥벌레라 자조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 내 옆에서 8살 된 아이까지 그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게 맘에 들지 않았는지, 어느 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개똥벌레가 아니야. 하나님 앞에서 늘 아름다운 별이야.” 목회자다운 따뜻한 위로가 마음을 어루만졌지만 스스로 되묻는다. ‘정말 나는 여전히 빛나고 있을까.’
한때 나도 별처럼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거침없이 도전하고 실패조차 두렵지 않던 날들, 더 크게 빛날 거라 믿었던 시절.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이자 개척교회 사모로 살아가다 보니 현실의 무게 속에서 내 빛은 점점 흐려지는 듯하다. 함께 별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개척을 시작했지만 어느새 저만치 앞서 반짝이는 교회를 바라보며 제자리만 맴도는 현실을 마주하면 나는 겨우 작은 빛을 내는 반딧불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안다. 반딧불의 빛은 희미해도 사라지진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둠이 깊으면 오히려 그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님은 높이 빛나는 별뿐만 아니라 낮은 곳에서 조용히 빛을 내는 개똥벌레 같은 우리도 사용하신다. 비록 작은 개척교회이고 희미한 불빛일지라도 지역사회에서 이웃 곁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쉼과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그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빛 아닐까.
세상의 기준에선 반딧불의 빛은 미약하고 하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빛일지라도 어둠 속에선 길을 밝히는 힘이 있듯, 우리의 걸음이 더디고 부족해 보여도 사랑과 섬김을 향한 길이라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길 끝에서 우리를 “수고했다” 안아주시며 따뜻한 빛으로 맞아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황가람은 ‘나는 반딧불’로 이제 많은 사람에게 빛을 전하는 스타가 됐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개똥벌레’ 같은 내가 싫지 않다. 저 먼 밤하늘에 박혀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빛나는 별이 아니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반딧불로 살고 싶다. 이 땅의 사모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빛을 내며 담담히 걸어가길 바란다. 크게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이미 하나님 앞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니 말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