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두고 온종일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3형제 가운데 장남이라 동생 가족과 함께 드리는 가정예배를 마치고 세배할 때에 자녀들을 위한 덕담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따로 생활하는 세 가정에서 자라나는 여덟 명의 자녀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우리 가정에 큰 흔적을 남겨주신 할머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 곁을 떠나 도시에서 할머니와 자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손주의 도시 유학을 돕기 위해 헌신하신 할머니께서는 “밥값을 해야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미숙하게 처리하면 “얘는 언제 밥값을 하려고 이러나” 하셨고, 좋지 않은 행동을 하다 들키면 “제발 밥값을 하면서 살아라” 하는 꾸중을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교훈은 철없는 손주에게는 듣기 싫은 잔소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신학교에 다닐 때 본가의 문간방에서 더부살이를 했습니다. 손주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밥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신학생 시절은 서러운 일이 많았고, 가난한 신혼생활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한 시절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중에 할머니는 집사람에게 “언제 밥값을 할 거냐” 하고 물어보셨습니다. 미숙한 새댁은 무슨 의도의 질문인지를 몰라 머뭇거리다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손주는 화를 내면서 식사 자리에서 도망쳐 나갔습니다.
손주는 이제 나이 들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른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밥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돌아보다가 저는 이번 설에 “밥값을 하는 사람”이 되라는 덕담을 결국 말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밥값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밥값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어린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좋은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 또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밥값 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밥값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밥값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나아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실천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밥값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평생을 살아가면서, 밥값을 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고 우리의 미래가 달라졌으리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이렇게 기도로 시작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주님이 주시는 밥 한 그릇의 값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밥값을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교회에 불러주신 성도님들이 밥값을 하는 사람, 밥값을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