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광화문파와 여의도파

입력 2025-02-27 00:37

세계적 인구학자 폴 몰런드가 쓴 ‘최후의 인구론’을 보면 한국을 언급한 대목이 곳곳에 많이 나온다. ‘총체적 위기의 전형’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그만큼 한국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그중 약간 의아한 부분도 있다. 저출산의 중요한 요인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만연한 반출생주의 문화’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식당이나 카페 등 공공장소에서 ‘어린이 및 반려동물 출입금지’ 표지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런 태도가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한 한국에 아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너무 옛날 얘기 아닌가.

한때 대부분 아이 한 명 낳아 애지중지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버릇 없는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일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아이들도 귀해졌다. 아이만 보면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어 귀여워서 어쩔줄 몰라하는 광경이 더 익숙해졌다. 문화가 문제라면 이제 좀 희망을 품어도 되나 싶다. 2023년 0.72명을 찍은 출산율이 0.6명대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약간의 반전이 일어났다. 코로나19 이후 미뤄 왔던 혼인이 증가하면서 지난해 출산율이 소폭이나마 상승해 0.75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더라도 추세가 상승으로 돌아섰다는 믿음은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다. 갈 길은 멀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저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출산을 장려하는 제도와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인 (출산 장려) 문화의 중요성이다.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예외’라고 소개한 이스라엘의 출산율은 3명 언저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아이를 향하는 사랑스러운 시선, 자녀를 얼마나 많이 낳느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문화의 한 부분인 종교의 영향도 크다. 소련 해체와 더불어 1991년 독립한 조지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조지아의 출산율은 1.5명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다소 줄긴 했지만 2014년과 2015년 무렵엔 2.3명을 넘어서면서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시작은 2007년 조지아 정교회의 총대주교 일리아 2세가 이미 두 자녀가 있는 기혼 부부가 아이를 더 낳는다면 그 아이에게 직접 세례를 주고, 대부가 돼주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일리아 2세가 세례를 한 아기는 3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400만명 안팎의 인구수를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조지아만의 특수한 상황이기도 하다. 조지아 인구의 80%가 조지아 정교회 신자라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조지아에서 가장 신뢰받고 존경받는 기관이 바로 교회라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회를 대표하는 곳은 어디일까. 비기독교인들에게 말이다. 추측건대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광화문파’와 ‘여의도파’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안타깝게도 광화문파의 중심인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여의도파를 이끄는 손현보 부산세계로교회 목사와 전한길 강사 등이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이 돼 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 부정선거론을 확신하고, 한국이 공산화될 것이라는 걸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은 탄핵 반대가 성경적 가치관과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다른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과거 군부독재에 맞선 마지막 비빌 언덕이 교회인 적이 있었다. 아마도 교회에 대한 신뢰가 그때 최고점을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보다 먼저 교회에서 아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두렵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