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선하공간과 양돈빌딩

입력 2025-02-27 00:38

충북 오송역은 승객이 출입구에서 4층 승강장까지 올라가야 고속철도를 탈 수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역 주변에는 약간 흉물스러운 기둥 여럿이 높게 서 있다. 오송역 철로 아래 공간 즉 ‘선하공간’은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오송역은 최대 높이 18m, 폭 300m, 길이 3.2㎞에 달하는 세계 최대, 최장의 선하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높이 18m의 콘크리트 기둥 수십 개가 철로를 연결하고 있다.

충북도는 현재 이 선하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철교 아래 빈 공간에 지상 3.6m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2층 필로티 구조 건축물을 세우는 방식이다. 도정 홍보·전시 구간뿐 아니라 소규모 회의와 토론 등이 가능한 곳으로 만든다고 한다.

오송역이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국내 유일의 고속철도 분기역인 만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오송역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업사이클링 사업 추진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라며 “현대적인 구조물을 활용해 충북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선하공간을 개발하겠다”고 자신했다.

이런 선하공간을 쓸모 있는 곳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은 선진국에서는 흔하다. 영국 런던브리지역 선하공간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카페, 음식점 등 다양한 상업시설로 이뤄져 있다.

특히 일본 도쿄에서는 선하공간이 숙박시설로도 활용된다. 실제 지난해 말 한 TV 연예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아키하바라역 선하공간 호텔에 묵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이색적일 뿐 아니라 교통 접근성이 좋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큰 관심을 모았다.

충남에선 ‘양돈빌딩’이라는 이색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양돈빌딩은 사료 생산과 돼지 생산·사육, 도축, 돼지고기 가공까지 한번에 해결하는 이른바 ‘인공지능(AI) 돼지빌딩’이다.

양돈빌딩은 여러 장점이 있다고 한다. 개체별 정밀 급여, 전자동 냉난방과 환기 시스템, 질병 예측 시스템, 차단 방역 등 스마트 축산 기술을 적용해 부지를 줄이고 노동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 돼지 배설물은 퇴비나 액비로 만들고, 빌딩 최상층에 악취 제거와 환기 시스템을 설치해 냄새도 차단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중국은 이런 양돈빌딩을 통해 공간 절약, 환경보호는 물론 큰 수익도 올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국 광둥성과 후난성 등에 지어진 양돈빌딩에선 총 250만 마리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특히 2016년 중국에서 양돈빌딩이 처음 운영된 뒤로 가축 전염병이 발생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양돈빌딩을 추진 중인 김태흠 충남지사는 “소규모 농가를 집적·규모화해 사육부터 육가공까지 원스톱으로 끝내고 분뇨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최첨단 축산단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도는 최근 중국 기업과 양돈빌딩 기술·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선하공간 활용은 자투리땅을 개발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뿐 아니라 생활을 개선하고 수익까지 창출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보인다. 양돈빌딩도 공간 활용성, 수익, 환경보호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창의적인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대외 경제 여건도 좋지 못하다. 이럴수록 변화와 혁신으로 새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선하공간과 양돈빌딩과 같은 새로운 시도는 우리 사회에 큰 활력을 줄 수 있다. 충북과 충남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모규엽 사회2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