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다. 노인 인구는 2050년에 지금의 2배가량인 40.1%, 2072년엔 전체의 절반 가까운 47.7%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통계청 장래인구 추계).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과 숙제를 안기고 있다. 다양한 국가·사회적 어젠다와 정책적 화두가 초고령사회에 맞춰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고령층의 건강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고령층은 면역력과 신체기능 저하로 감염병에 취약하다. 중증화율과 병원 입원율, 사망률도 높다. 코로나19 대유행 3년여간 여실히 경험했다. 매년 찾아오는 독감 시즌에 인플루엔자 감염과 사망이 가장 많은 연령대이기도 하다. 최근엔 비만이나 만성질환 유병 연령이 낮아지면서 65세 미만의 기저 질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기저 질환자 역시 감염병 고위험군에 속한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건강수명과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질병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지내는 기간이 17.3년(2021년 기준)이나 된다. 이 기간에 감염병 노출 위험은 더욱 커지고, 감염병 이후 신체기능 저하로 인해 건강수명 악화가 반복된다. 의료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방 중심, 정기 관리 건강증진 정책으로 건강수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은 질병 예방과 건강 관리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국내 NIP는 영유아 등 어린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정부는 21개 감염병에 대해 23종의 백신을 NIP로 무료 지원한다. 19종이 12세 이하 어린이 대상이다. 성인은 임신부(인플루엔자)와 일부 여성(HPV 백신)에 국한되고 노인의 경우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PPSV23 백신) 접종 2종뿐이다. 이 때문에 고위험군 성인, 특히 고령층에 대한 NIP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건강 수준을 높이고 국가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마침 초고령사회에 국가예방접종의 방향성을 타진할 공론의 장이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로 국회에서 마련됐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제시된 의견들이 향후 정부 정책에 반영되길 기대한다. 기자협회 설문조사에서 꼭 추가돼야 할 고령층 대상 NIP로 폐렴구균 PCV 백신, 대상포진 백신, 코로나19 백신 순으로 꼽혔다.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현재 임시 NIP로 시행되고 있다. 정부의 백신 도입 우선순위 평가에선 남자 청소년 HPV 백신, 성인 만성질환자 인플루엔자 백신, 노인 대상포진 백신 등이 순위에 오른 바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신규 백신들은 대부분 성인 영역의 질병 예방을 타깃으로 한 것들이다.
차제에 국가예방접종의 정의와 목적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겠다. NIP 확대와 신규 백신 도입에 있어 늘 장애 요인은 예산이었다. 비용 효과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실효성 있는 NIP를 위해선 의학적, 보건학적 필요성이 우선되고 연령보다 고위험 기반 접근이 확대돼야 한다. 지금처럼 전액 지원이 아니라 보장 범위를 넓히되 일부 비용만 지원하는 등 방식의 변화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과 가치의 문제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예방접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어린이를 넘어 노인을 포함한 생애 전 주기를 관통하는 예방접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올 하반기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보건 분야 주제도 ‘생애주기 예방접종’이 채택됐다고 한다. 우리도 미래 인구 변화와 글로벌 상황에 맞춰 국가예방접종의 선제적 리셋이 필요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