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500만 달러짜리 골드카드

입력 2025-02-27 00:40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무렵, 많은 홍콩 사람들이 탈중국 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중국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자유와 경제적 안정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홍콩인의 이목을 끈 ‘망명지’가 캐나다였다. 캐나다 정부가 1986년부터 홍콩 반환을 겨냥해 투자 이민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1~2억원 정도의 저렴한 금액을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홍콩 반환을 앞두고 수많은 부유층과 사업가들이 밴쿠버와 토론토 지역에 대거 유입됐다. 홍콩인들로 북적대는 밴쿠버를 ‘홍쿠버’로 부를 정도였는데 1990년대 캐나다로 건너간 이민자 수는 홍콩 인구의 3%에 해당하는 2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전까지 은퇴 후 낙원으로 밴쿠버를 택한 한국인들이 많았으나 홍콩인들에 밀려 동부지역으로 이주하는 경향이 보일 정도였다.

취임하자마자 불법 체류자 추방을 밀어붙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500만 달러(72억원)를 내면 영주권을 주는 골드카드(Gold Card) 정책을 2주 뒤부터 시행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탕색이 녹색이어서 그린카드(Green Card)로 불리는 일반 영주권과 차별화·고급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존에 미국에 최소 90만 달러(13억원)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투자 이민(EB-5) 제도를 폐지하고 골드카드를 시행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1990년대에 EB-5 제도를 도입했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으로부터 외국인 투자를 유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EB-5가 서민들 일자리 창출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골드카드는 부자들만을 위한 이민제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홍콩인들이 선택한 캐나다 영주권 제도가 자유를 옹호한다는 평가를 들었던 것과도 비교된다. 이러다가 뉴욕 자유의 여신상마저 더 이상 ‘자유와 기회의 상징’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있는 특권’을 의미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지, 그들만을 위한 트럼프의 이민 정책이 미국의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우려된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