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WTO 체제 종언
일시적 아닌 구조적 변화
산업 공동화 현실 될 가능성
해외투자기업에 초점 맞추고
물량 아니라 돈 흐름 좇는
시각과 기준 전환 필요
트럼프 충격 단기 대응 넘어
새 시대 맞는 종합정책 준비를
일시적 아닌 구조적 변화
산업 공동화 현실 될 가능성
해외투자기업에 초점 맞추고
물량 아니라 돈 흐름 좇는
시각과 기준 전환 필요
트럼프 충격 단기 대응 넘어
새 시대 맞는 종합정책 준비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가 현대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럼 그가 열어젖힌 시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외교안보 서클에서는 2차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80년간의 ‘규칙(rule)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공식 사망 선언이라고 한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등에 영토적 야심까지 드러낸 것은 신제국주의 혹은 19세기 ‘강대국 정치’의 부활이라고 한다.
경제 통상 전문가들의 눈에는 보호무역주의 시대의 부활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지난 80년간 이어져온 자유무역 기조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언이다. 4년 뒤 트럼프를 이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1기에 이어 집권한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트럼프 때의 관세를 그대로 유지한 게 이를 입증한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결국에는 부작용만 남길 것이라는 미국 내 경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기업들에 트럼프 관세는 현실이다. ‘적응하거나 아니면 죽거나’의 문제다. 트럼프가 전 세계에 날리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멕시코든, 캐나다든 미국 인접국에서 생산한 뒤 우회 수출해도 소용없다.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라는 것이다.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는 이미 가속도가 붙었다. 특히 제조업의 대미 투자 규모는 2020년 23억6000만 달러에서 2022년 80억3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이윤 극대화와 성장이 존재 이유인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다. 이를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한국경제 전체로는 이로 인한 산업 공동화와 일자리 상실, 세수 감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국 내 생산시설 설립은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하지 않았던 과거 대중국 투자와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중국과 한국 간 기술격차로 국내 기업들은 노동집약적 부품업체를 중국으로 이전하는 대신 기술·자본집약적 부품업체를 국내에 남기는 선택이 가능했다. 반면 대미 직접투자의 경우 첨단 생산시설과 기술, 제조공장 구축 노하우까지 이전함은 함은 물론 소재·부품까지 현지에서 조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제조업 생태계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미국이 강력한 제조업 국가로 변신하는 길을 열어줘 중국에 이어 미국이 한국의 강력한 경쟁국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트럼프 관세’로 대표되는 세계 무역환경 변화가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변화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자유무역 시대에 적응, 진화해온 기업·산업정책, 세제 등 각종 제도를 보호무역 시대에 맞게 새로 짜야 한다. 우선 갈수록 규모와 비중이 늘어날 해외투자기업에 대한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기업을 내수기업, 수출기업, 해외에서 생산·영업 활동을 하는 해외투자기업으로 나눈다면 그동안 당국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게 이들 해외투자기업이다. 앞으로는 이들이 이룬 혁신과 경영 성과를 어떻게 국내와 연결할 것인가가 정책의 주요한 목표가 돼야 한다. 예를 들면 해외투자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을 국내로 들여와 투자로 이어지게 하는 게 수출 증대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경영활동과 재무상황에 대한 데이터나 통계조차 정비돼 있지 않다. 통상전문가인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투자기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경제정책의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또한 물량 위주의 상품 수출에 주로 맞춰진 경제정책의 목표와 기준을 국내와 해외투자기업 간 오가는 자금 등 돈의 흐름을 중시하도록 바꿔야 한다. 이런 기준 전환을 통해 해외투자기업이 벌어들인 수익금의 국내 환류를 극대화하는 기업정책·세제의 설계가 가능하다. 미국 재무부와 국세청(IRS) 등이 오래전부터 빅테크 기업 등의 해외 자금을 면밀히 살펴보고 국내로 들여오는 노력을 줄기차게 해온 것은 타산지석이다.
크게 보면 이런 시각 전환도 보호무역 시대에 맞는 ‘종합정책’의 한 부분일 뿐이다. 주 52시간제 예외 확대 등 노동시장을 좀 더 유연화해야 한다. 기업을 규모별로만 나눈 뒤 중소기업 보호에만 치중하는 기업정책을 쇄신해야 한다. 기업이 해외로 나가기보다 국내에 머무는 게 낫고, 해외투자기업이라도 국내와의 연계를 늘리는 게 이득임을 자각하게 해야 한다. 국내 정정이 불안하지만 트럼프 파장을 최소화하는 단기 대응을 넘어 구조적 변화에 맞춘 종합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배병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