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대폭 하향 조정한 데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커진 통상 환경 악화가 자리한다. 계엄 사태 충격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발 관세 정책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출과 내수 모두 하방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최악의 경우 올해 성장률이 1.4%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25일 ‘2025년 2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지난해 11월 전망치)보다 0.4% 포인트 낮은 1.5%로 제시했다. 지난달 한은이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시장 충격 완화를 위해 이례적으로 발표한 중간 점검 전망치(1.6~1.7%) 하단보다 낮다. 국내외 전망과 비교해도 최저 수준이다. 다만 내년 성장률은 1.8%로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심리 위축, 미국의 관세 정책 등 영향으로 내수 회복세와 수출 증가세가 당초 예상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성장률 전망 수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계엄 사태 등 국내 상황이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이번 전망 때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중간 점검 때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으로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당시 한은은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가 올해 2분기 이후, 다른 국가들에 대한 관세는 내년쯤 부과될 것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관세 부과 시기가 앞당겨졌고, 관세율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예상을 뛰어넘는 통상 압력에 올해 수출 증가율이 0.9%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3개월 전 대비 0.6% 포인트 낮아졌다. 건설·설비투자 전망도 큰 폭으로 낮췄다. 설비투자의 경우 반도체 장비를 중심으로 완만한 성장세를 나타내겠지만 주요국 무역 정책 불확실성이 상승 폭을 제한할 것으로 봤다.
한은은 미 관세 정책에 따른 글로벌 무역 갈등 향방에 따라 성장률 변동 폭도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상호 보복을 이어가며 통상 갈등이 격화하는 비관적 시나리오 아래에선 경제성장률이 1.4%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반대로 미국이 중국 외 국가와는 협상을 통해 저강도 관세를 부과하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선 1.6%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 총재는 “올해 1.5% 성장 전망은 상당히 뉴트럴한(중립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며 “올해 1.5% 이상 성장하려면 재정 정책과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추경을 15조~20조원 규모로 편성해 성장률을 0.2% 포인트 정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의 성장률 하향 조정은) 구조적 요인과 최근 한국의 대내외적 경제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경제 성장 회복을 위해선 추경 편성이나 소상공인 지원 방안 등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인호 이의재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