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셀 ‘빅3’가 전기차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비전기차 사업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전기차 시장 침체로 주력 사업이 타격을 입자 비주력 사업을 키워 위기를 돌파하고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중장기적으로는 로봇·우주선·도심항공교통(UAM)·선박용 배터리 시장이 표적이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 탓에 ‘캐즘(일시적 수요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셀 3사는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동반 적자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은 한 바구니에 있던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고 있다. 삼성SDI는 전날 경기 의왕연구소에서 현대차·기아와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고 25일 밝혔다. 양사는 로봇 맞춤형 고성능 배터리를 개발하고, 이를 다양한 로봇에 탑재하기 위해 MOU를 체결했다. 현재는 로봇 전용 배터리가 없어 전동 공구, 전기 이동수단 등에 쓰는 소형 배터리를 로봇에 탑재한다. 하지만 구조가 복잡하거나 형태가 유동적인 로봇은 배터리 탑재 공간이 제한적이다. 여기에 기존 소형 배터리 제품을 넣으면 탑재 가능 공간을 온전히 활용할 수 없고, 배터리의 출력 용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삼성SDI 관계자는 “로봇용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향상을 위해 고용량 소재를 개발하고 설계 최적화를 통해 배터리 효율 고도화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SDI와 현대차는 지난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간 ‘배터리 회동’ 이후 협력을 강화하는 흐름이다. 당시 정 회장은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둘러봤고 두 달 뒤 이 회장은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답방했다.
LG엔솔은 ESS 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UAM, 선박, 로봇 등 미래 사업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미국 스페이스X의 우주선에 전력 공급용 배터리를 납품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베어로보틱스가 생산하는 로봇에도 원통형 배터리 ‘2170’을 단독 공급한다. 김제영 LG엔솔 CTO 전무는 지난 20일 ‘배터리 재팬 2025’ 연설을 통해 “무게 대비 에너지 밀도가 높고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리튬황 배터리를 미래 항공 기술인 UAM, 고고도 플랫폼(HAPS) 등 용도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LG엔솔, 삼성SDI와 달리 소형 배터리 포트폴리오가 없는 SK온은 중대형 전지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ESS 시장 진출에 집중할 계획이다. SK온은 아직 ESS 생산설비를 갖추지 못했다. 후발주자인 SK온은 지난해 말 기존 ESS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속 조직인 ESS 솔루션·딜리버리실로 확대 개편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만 바라봐서는 위기 극복과 미래 먹거리 확보가 모두 어렵다는 게 3사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배터리 기업들의 포트폴리오 확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