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권력자들 현실에 있다면 어떨까

입력 2025-02-26 01:51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 새디우스 로스는 미국 대통령이자 강력한 힘을 가진 레드 헐크로 변신한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감옥에 갇히는 선택을 한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최근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 눈길을 끄는 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앤서니 매키)보다 그와 싸우는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 대통령이다.

이번 영화에서 악역인 그는 슈퍼 파워를 지닌 ‘레드 헐크’로 변신해 백악관을 부수고 캡틴 아메리카를 공격하며 난폭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자신의 본능과 싸우던 로스는 관계가 소원해진 딸을 떠올리며 폭주를 멈춘다. 그리고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다.

이를 본 관객들은 영화 캐릭터와 실제 정치 상황을 대입하며 현실과 다른 영화 속 상황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영화가 현실을 풍자하고 꼬집는 건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으로 혼란성이 커지면서 영화 속 권력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복잡해지고 있다.

28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에선 니플하임 행성의 독재자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이 관객들의 분노를 이끌어낸다. 마샬은 선거에 실패한 정치인으로 극단 종교 세력을 등에 업고 행성 개척단의 리더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인종주의, 성차별, 우생학, 자본주의 등 모든 비윤리적·비인간적 요소를 가지고 폭정을 일삼는다.

마샬은 역사 속 여러 독재자를 떠오르게 한다. 주변 인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면서도 아내 일파(토니 콜렛)의 말에는 아이처럼 따르는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며 블랙코미디를 선보인다. 마샬은 “니플하임을 순수한 백색 행성으로 만들겠다”고 선포하고, 여성 구성원이 죽으면 인간적인 애도를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을 기회를 놓쳤다”며 분노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마샬의 모티브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봉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마다 떠올리는 사람들이 달랐다”며 “한 이탈리아 기자는 ‘무솔리니를 모델로 한 것이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지난달 개봉한 ‘시빌 워: 분노의 시대’에는 흡사 현실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미국의 3선 대통령은 민간인에 대한 정부군의 공습을 승인하고 미연방수사국(FBI)을 해산한다. 대통령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헌법을 무시하고, 정치가 사라진 국가에서 무질서와 극단적인 대립만이 존재한다.

관객들에게 영화와 실제가 겹쳐 보이는 상황은 작품 속 인물에 대한 관심과 분석을 키운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보이는 지금의 현실은 씁쓸함을 안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25일 “예전보다 지도자들이 ‘악당’이 돼가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파시즘이 두드러지면서 권력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부각되고, 그것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면서 “‘지금과 같은 정치 과몰입 현상이 긍정적인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관객들로 하여금 지금의 상황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대리만족을 준다는 점에선 영화가 순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