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찾는 겨울 철새 100여 종 130여만 마리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가창오리다. 30만여 마리로, 지구상에 생존하는 가창오리의 90% 이상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멸종 위기 취약종(VU)으로 분류된 가창오리는 겨울 초입 시베리아 혹한을 피해 남하해 전남 해남 영암호와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 등에서 월동한다. 번식지로 되돌아가는 이듬해 2~3월에 ‘만남의 장소’인 충남 예당호와 삽교호에 모인다.
예당호는 충남 예산군의 대흥면과 응봉면에 걸쳐 있는 대규모 저수지다. 예산군 및 당진시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63년 완공했다. 최근에는 관광지로 더 주목받고 있다.
예당호에는 요즘 가창오리가 대거 모여 있다. 낮에는 천적을 피해 물 위에서 쉬다가 저녁이 되면 인근 농경지로 이동해 먹이활동을 하는 특성이 있다. 수면 위 가창오리는 검은 띠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대형 유지를 위해 끝없이 움직인다.
해 질 무렵 수십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라 화려한 군무(群舞)로 하늘을 수놓는다. 무리가 이리저리 모였다 흩어졌다 할 때마다 ‘돌고래’ 등 기기묘묘한 형상을 펼친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몸길이 40㎝ 가창오리가 자신의 몸통 3배 정도 간격을 유지하며 수십만 마리가 일사불란하게 나는 ‘거대 유기체의 창조적 아름다움’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는 수만 마리가 검은 연기처럼 하늘을 휘저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펼치는 군무를 ‘악마의 혼령이 춤을 추는 듯하다’고 묘사했다.
예당호의 명물로 음악분수, 출렁다리 등이 있지만 물이 가득 찬 겨울에는 ‘황금나무’라고 불리는 미루나무가 가장 인기가 많다. 육지가 아닌 물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해가 저무는 저녁이 되면 놀라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무 뒤편 수면 위로 석양이 스며들면 그 빛을 받은 미루나무가 황금색으로 변한다.
예당호에는 최근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섰다. 응봉면 후사리에 우뚝한 높이 70m의 예당호 전망대다. 웅장한 모습으로 완성됐지만 개장일은 미정이다. 인근 숙박동(펜션 단지), 어린이모험시설(로프코스), 무빙보트 등 부대시설 조성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는 7월 개장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출렁다리와 모노레일은 운영 중이다. 402m 길이의 출렁다리는 주탑 바닥 아래로 수면이 훤히 보이며 아찔한 추억을 선사한다. 야간엔 형형색색 조명으로 빛난다. 모노레일은 출렁다리, 조각공원, 예당호 경관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산악열차 방식의 모노레일이다. 예당호 수변 1320m를 약 22분 동안 운행한다. 동절기 휴장에 들어갔던 음악분수, 인공폭포, 벽천분수, 국민여가캠핑장은 다음 달 운영을 재개한다.
새하얀 주탑을 기준 삼아 좌우로 전개된 예당호 출렁다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황새를 닮았다. 예산군 군조(郡鳥)가 황새다. 황새라는 이름은 ‘한새’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은 크다는 뜻을 지녔고, 여기에 ‘새’를 붙여 큰 새라는 의미를 가진다. 두루미(단정학)와 헷갈리기 쉽다. 둘 다 하얀 몸통에 날개에는 검은 무늬가 있지만 황새는 머리 전체와 목이 하얗고 부리가 굉장히 두꺼운 반면 두루미는 빨간 피부가 노출된 정수리를 제외한 머리와 목이 검은색이고, 얇은 부리를 가지고 있어 구별된다. 황새는 육식성 조류로 태어나자마자 성대가 퇴화해 울지 못한다. 대신 부리를 부딪쳐 소리를 내고 소통한다.
황새는 전 세계적으로 660마리 정도만 남아있는 멸종 위기의 국제 보호 조류다. 예산군이 6년간 전국황새동시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전국에 최대 230여 마리의 야생 황새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군 광시면에 자리한 ‘황새공원’은 황새 증식과 자연 방사를 위한 야생 적응 훈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주변에서 야생 황새의 둥지도 볼 수 있다. 이미 짝짓기를 통해 산란한 황새가 포란 중이다. 보통 3~5개의 알을 낳고 30일가량 포란해 부화시킨다.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는다. 황새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 짝을 보살필 뿐 아니라, 새끼 황새는 나이 들거나 병든 부모 황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큰 날개로 정성스레 보호하는 ‘효도새’다.
여행메모
‘황금나무’ 카페 가창오리 탐조 명소… 예당호 음악분수 내달 가동
‘황금나무’ 카페 가창오리 탐조 명소… 예당호 음악분수 내달 가동
지난해 12월 충남 부여~경기도 평택을 잇는 서부내륙고속도로(익산평택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충남 예산 가는 길이 편해졌다. 예당호 인근에 예산예당호 휴게소와 나들목(IC)이 들어섰다.
가창오리가 호수에 이·착륙하는 때는 겨울 기준 해뜨기 이전과 오후 5시 이후다. 예당호에서 저녁때 가창오리를 탐조할 때는 호수 동쪽으로 가야 한다. '황금나무'가 있는 카페가 명소다. 하지만 가창오리가 모여 있는 곳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일찍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 좋다.
예당관광지(예당호 출렁다리&음악분수, 예당호 모노레일)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음악분수는 다음 달 1일 개장해 12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가동한다. 출렁다리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다.
예당호 서남쪽에 '슬로시티 대흥'이 있다. 대흥동헌, 의좋은형제공원, 봉수산 임존성과 봉수산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광시한우마을도 가깝다.
예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