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기준금리를 2.75%로 0.25% 포인트 인하했다. 기준금리가 2년4개월 만에 2%대로 복귀한 것보다 눈에 띈 건 성장률의 가파른 하향 전망세다. 한은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2.1%에서 1.9%로 내린 지 3개월 만에 0.4% 포인트나 재차 낮출 정도로 우리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은 1430원을 웃돌며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고공행진 중이다. 고환율은 자본 이탈,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안정된 듯했던 소비자물가는 3개월 연속 상승하며 지난 1월(2.2%)엔 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그럼에도 금리를 내린 건 계속된 경제 심리 위축에다 미국 관세 정책이 예상보다 훨씬 거칠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 요소인 소비(2.0→1.4%), 설비투자(3.0→2.6%), 수출(1.5→0.9%) 전망치 모두 급격히 꺾였다. 관세전쟁이 최악으로 가면 올해·내년 성장률이 1% 초반대로 내려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물가와 환율 불안에도 한은이 부양책을 꺼낸 만큼 정부와 정치권이 화답해야 한다. 추가경정예산의 조속한 편성, 반도체특별법 등 민생·경제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이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저성장 추세 우려에 “그게 우리 실력”이라며 “구조조정을 안 하고 기존 산업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10년간 신산업이 도입되지 않아 수출 경쟁력 하락을 불렀다고 했다. 이 문제들을 놔둔 채 재정을 동원하고 금리만 낮춘다면 나라 전체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리와 재정 정책은 당장의 고통을 멎게 하는 진통제일 뿐이다. 경제의 기초체력과 내성을 갖춰야 지속가능한 미래가 담보된다는 점을 이 총재가 지적했다. 정보기술(IT)에서 인공지능(AI) 시대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한국 경제는 헤매고 있다. 신산업 개척을 위한 창조적 파괴와 사회적 갈등을 경제주체들이 애써 외면한 채 쉬운 길로만 가려 했기 때문 아닌가. 여야정 국정협의회가 이 총재의 고언을 정책에 반영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