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고성능’ 인공지능(AI) 모델로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의 본사는 중국 저장성의 성도 항저우에 있다. 창업자 량원펑은 이곳 저장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2015년 항저우에서 딥시크의 모태인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를 창업했다.
항저우는 중국 최대 테크기업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어 ‘중국 전자상거래의 수도’로 불리지만, 최근에는 딥시크 등 ‘항저우 6소룡’으로 주목받고 있다. 나머지 5소룡은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사 유니트리, ‘흑신화 오공’으로 중국 게임의 역사를 새로 쓴 게임사이언스,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의수·의족 등을 개발하는 브레인코, 4족 로봇 회사 딥로보틱스, 3D 프린팅업체 매니코어로 모두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이다. 최근에는 증강현실(AR) 기반 안경제조업체 링반이 부상하면서 항저우 6소룡이 확대될 조짐도 보인다. 항저우 이전에 중국을 대표하는 혁신도시는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이었다. 1980년 중국 최초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곳은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세계 1위 전기차업체 BYD, 드론·카메라 제조회사 DJI, 빅테크 텐센트 등 세계적 기술기업을 다수 배출했다.
선전이 아닌 항저우에서 딥시크 같은 혁신기업이 탄생한 배경은 중국에서도 연구대상이다. 항저우와 경쟁관계에 있는 장쑤성의 성도 난징도 이례적으로 장쑤성 당위원회 기관지 신화일보를 통해 분석에 나섰다. ‘딥시크는 왜 항저우에서 나왔나’ ‘난징은 왜 항저우 6소룡을 배출하지 못했나’ ‘항저우에는 딥시크가 있는데 난징에는 뭐가 있나’ 등의 기사를 통해 두 도시를 비교했다. 항저우가 차세대 혁신도시로 부상한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창업 지원과 인재 확보에 진심이었다는 점이다. 항저우는 알리바바 덕분에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들이 몰려들었지만, 만족하지 않고 ‘혁신창업의 새로운 천국’을 표방했다. 대표적인 창업지원정책은 2013년부터 구축한 ‘동반창업공간’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103개가 운영 중인데 총면적이 38만㎡가 넘는다. 2800여개 기업을 인큐베이션하며 9000여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창업보증대출도 강력하다. 대학생, 졸업 5년 이내인 대학졸업생과 등록 실업자, 전역한 군인 등이 창업하면 최대 1억원의 대출을 지원하고 이자를 전액 보조한다. 2021년 이후 9956개 기업이 약 1조원의 대출을 받았다. 지역 은행들은 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을 보고 신용 대출을 해주고 시정부와 지역 자본이 공동으로 조성한 과학기술펀드는 혁신기업을 발굴해 투자한다.
반값집세, 연구개발비 지원, 세금감면 등 각종 인센티브로 외부 기업을 유치했다. 인재 확보를 위해 항저우에 와서 일하면 학력에 따라 최고 2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고 중국 도시 중 처음으로 취업 전 정착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구직활동을 위해 항저우를 방문하는 이들에겐 7일간 무료 숙박 혜택을 제공한다. 항저우는 2018년에 이미 인터넷 엔지니어 인재 순유입률에서 중국 도시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유입된 엔지니어에는 상하이 출신이 23.6%로 가장 많았고 베이징과 선전이 각각 17.2%, 6.9%로 뒤를 이었다. 모두 항저우보다 경제규모가 크고 소득수준이 높은 도시다. 중국의 한 언론은 항저우를 ‘전 세계 인재의 수확기’라고 불렀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세계적 도시들과 경쟁해 청년 인재를 유치하고 혁신 기업을 키우는 항저우의 모습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한국에선 제2의 도시인 부산마저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심각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지원과 해법이 필요하지만, 지방정부도 혁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