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민이 3년여 만에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23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중도보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집권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을 밀어내고 제1당에 오른 것이다. 독일 사회에 반이민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독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의 잠정 개표 결과 기민·기사당은 28.6%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AfD가 20.8%로 뒤를 이었다. 현 집권 세력은 참패했다. 사민당 득표율은 16.4%로 2021년 총선 대비 9.3% 포인트 급감했다. 사민당이 제3당으로 밀린 것은 1949년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녹색당도 3.1% 포인트 감소한 11.6% 득표에 그쳤다. 사민·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했다가 지난해 탈퇴한 자유민주당은 득표율 미달로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정권교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경기 침체가 꼽힌다. 독일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기민·기사당은 경제성장 촉진, 기업 규제 완화 등을 약속하며 현 정권의 경제 실정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이민 문제도 표심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규모 이민자 추방과 강력한 국경 통제를 주장하는 AfD가 의석수를 대폭 늘린 것이 이를 방증한다. AfD 득표율 20.8%는 지난 총선 대비 10.4% 포인트 급증한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극우 정당이 기록한 최고 성적이다. AfD는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된 옛 동독 지역 대부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알리스 바이델(46) AfD 공동대표는 “역사적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AfD가 그간 극우 성향 때문에 정계에서 배척돼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당내에는 여전히 나치를 추종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적지 않고 일부는 정부의 감시도 받고 있다. 유럽 극우의 새로운 간판으로 떠오른 바이델 대표도 나치 부역자의 후손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임명한 판사 한스 바이델이 그의 할아버지다. 바이델 대표는 골드만삭스 출신 금융 전문가이며 스리랑카계 여성과 동성 결혼을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선거 기간에 시민 수십만명이 AfD 반대 시위도 벌였지만 결과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 이민에 우호적이었던 기민·기사당조차 프리드리히 메르츠(70) 대표 취임 이후 반이민 정책으로 돌아섰다. 기민·기사당은 지난달 독일 정계의 금기를 깨고 AfD와 함께 이민 정책 강화 결의안을 통과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메르츠 대표는 AfD와 연정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향후 연정 협상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전체 630석 중 기민·기사당의 추정 의석수는 208석에 불과하다. 152석을 얻을 것으로 추정되는 AfD를 제외할 경우 사민당(120석)과의 대연정 외엔 선택지가 없다. 도이체벨레는 “연정 협상은 몇 주에서 몇 달까지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