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료에 이미 길들여졌는데…’ 반려동물 밥값까지 올랐다

입력 2025-02-25 02:02

고환율·고물가 시대, 반려동물 시장에 ‘펫플레이션’(Pet+Inflation)이 덮쳤다. 결정적인 요인은 사료 가격 인상이다. 국내 반려동물 사료 점유율 1위 로얄캐닌의 가격 인상으로 반려인구의 부담도 커졌다. 개·고양이 사료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에 있는 로얄캐닌의 가격 정책은 관련 반려인구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 사료 의존도가 높아 리스크 대처 능력이 낮은 반려동물 시장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은 24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고 밝혔다. 가격 인상 폭은 평균 4.8%로, 일반 사료부터 처방식 사료까지 전반적인 제품군에 적용된다. 수입 브랜드 힐스 역시 다음 달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다. 로얄캐닌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등 대외적 비용상승을 내부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업지속성을 위해 가격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며 “원료·포장·운송 등 생산비용 상승 압박 속에서 인상폭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식품기업들이 줄줄이 제품값을 인상하고 있는 가운데, 반려동물 사료도 예외 없이 가격이 치솟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반려동물 용품 가격지수는 2020년 100 기준 지난해 116.8까지 상승했다. 펫플레이션이 확인되는 수치다.


서울에서 장수묘 두 마리를 키우는 김모(27)씨는 “가격이 오른다길래 전날 병원에 갔는데 이미 인상된 가격을 적용하더라”며 “덴탈 케어 용품과 풋크림, 병원비까지 달에 15만원 넘게 든다. 반려동물은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실감 난다”고 토로했다.

국내 개·고양이 사료 시장 1위인 로얄캐닌은 1968년 프랑스 남부의 임상 수의사가 설립한 글로벌 펫푸드 시장의 선두 기업이다. ‘반려견·반려묘 맞춤 영양’을 앞세워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 ‘로얄캐닌코리아 유한회사’를 설립하며 본격 진출했다. 2010년대 이후 급성장한 국내 반려동물 시장에서 동물병원과 수의사 처방을 핵심 채널로 공략, 유통망을 구축했다. 처방식 사료의 특성을 활용해 ‘전문가가 추천하는 사료’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2015년 5월부터는 물류와 사업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서울·수도권 지역의 유통을 기존 대리점 체제에서 본사 직영 체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리점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로얄캐닌은 반려견과 반려묘 사료 부문에서 모두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로얄캐닌은 업계 최초로 2022년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20년 1568억원이던 로얄캐닌코리아의 매출액은 2023년 3244억원으로 3년새 배 이상 뛰었고, 당기순이익도 2.5배 이상 늘었다.

로얄캐닌의 견고한 시장 지위가 반려동물 사료 가격을 올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려동물 사료는 기호성이 크게 작용해 시장 자체가 비탄력적이다. 로얄캐닌의 특유의 향과 기름기에 익숙해진 반려동물은 다른 사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는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노령화에 따른 처방식 사료의 경우도 대체할 제품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호소한다. 반려견에게 10년간 로얄캐닌만 급여해 온 원모(30)씨는 “가격이 크게 올라 다른 사료를 줘봤지만 담석이 바로 생겼다”며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로얄캐닌을)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로얄캐닌 편중이 심한 가운데 현재 국내 펫푸드 시장에서는 기존 강자인 동원F&B, 하림펫푸드, 풀무원 등이 성과를 내고 있다. 대상, 농심 등 대기업도 신규 진입 중이다. 동원F&B는 이달부터 펫푸드 전문 브랜드 ‘뉴트리플랜’(NUTRIPLAN)을 미국에 수출하며 시장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과거 CJ제일제당, 빙그레, bhc 등은 시장 안착에 실패하고 철수한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한편 반려동물 관련 지출이 증가하면서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한 유기·파양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반려동물 산업이 커지면서 책임감 있는 양육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사료 가격 인상이 유기 문제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