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에선 인권 운동이 한창이고 (냉전으로) 군사비는 최대치를 찍고 있는데, 언제까지 먼지 폭풍과 개척시대 얘기만 할거야?”
여자친구 실비(엘 패닝)가 밥 딜런(티모테 샬라메)에게 말한다. 1961년 처음 무대에 오른 스무 살의 딜런은 포크계의 젊은 얼굴로 주목받지만 음반사로부터 자신의 곡 대신 다른 가수들의 커버 곡으로 앨범을 채우라는 요구를 받고 실망한다. 실비의 말에 자극을 받은 딜런은 직접 쓴 가사로 냉전과 격변의 불안한 시대에 저항을 노래하며 신드롬을 일으킨다.
포크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존 바에즈(모니카 바바로)와 함께 투어를 하면서 딜런은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틀에 박히지 않으려는 그를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틀에 맞추려 한다. “누구든 무대에 서는 사람은 별종이 돼야 해. 아름답든 추하든 평범한 건 안 돼”라며 다양한 시도를 하려는 딜런에게 포크 가수들은 음악적 순혈주의를 강요한다.
미국의 천재 아티스트 딜런을 그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포스터)이 오는 26일 개봉한다. 딜런의 인생 전반이 아니라 가수가 되기 위해 뉴욕을 찾은 이후 4년 간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 작품은 기존의 전기영화들과 차별화했다.
영화는 딜런이 자신의 우상 우디 거스리(스쿠트 맥네리)를 찾아갔다가 훗날 멘토로 삼게 되는 가수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를 만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어 파란을 일으킨 사건에서 끝난다.
냉전이 극으로 치닫던 1963년 발표한 ‘블로잉 인 더 윈드’를 통해 딜런은 반전과 평화, 자유를 노래한다.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사람들의 우는 소릴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을까’ 등 주옥같은 가사가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영화는 담았다. 딜런은 2016년 10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팝가수가 이 상을 받은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샬라메는 외모부터 표정, 말투 등 세세한 부분까지 딜런으로 ‘완벽 빙의’했다. 그는 이 영화로 제31회 미국 배우조합상(SAG)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등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노래,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다양한 재능을 뽐낸 샬라메는 이번 영화를 위해 5년 6개월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탑건: 매버릭’(2022)에서 파일럿 피닉스 역을 맡아 국내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바바로가 1960년대 포크계 여신 바에즈로 변신해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딜런과 음악적 영감을 주고 받는 순간들을 표현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20)에서 풋풋한 대학생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샬라메와 패닝의 재회도 반갑다. 딜런과 실비, 바에즈의 삼각관계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다.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 노튼이 포크 가수로 시거로 변신한 모습도 새롭다.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던 딜런에게 시거가 던진 “좋은 노래는 좋은 일만 할 수 있다”는 대사는 울림을 남긴다. 새롭게 해석된 딜런의 명곡들을 상영시간 내내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러닝타임 141분, 12세 이상 관람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