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은 연락책·교감은 마크맨… 망가진 학교 시스템이 낳은 비극

입력 2025-02-26 02:01
초등학생들이 지난 13일 고(故) 김하늘양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김양을 추모하고 있다. 김양 사건을 두고 이른바 ‘폭탄 교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학교와 교육 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연합뉴스

폭탄교사 외면 참극 부른 학교 현장
교장 권한·교사 교권 균형 무너져
교원단체 맞물려 의사결정도 왜곡

‘긴급대응팀’ 등 대책 쏟아내지만
기본 무너진 학교서 효과 미지수

‘폭탄교사’는 꽤 오래전부터 교사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었습니다. 교사 앞에 붙은 ‘폭탄’의 뜻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고, 터질 때 주변에 있으면 피해 입을 수 있으니 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학교로 전근 보내고 싶어하는 ‘폭탄 돌리기’ 대상으로 교직 사회와 학교, 교육 당국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있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폭탄교사 문제를 외면해온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갓 학교생활을 시작해 꿈을 키워가던 어린 학생의 목숨으로 치러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폭탄교사인 명모씨에게 살해된 김하늘(8)양 사건을 들여다보면 학교 시스템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명씨는 범행 닷새 전인 지난 5일 학교 컴퓨터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며 컴퓨터를 때려 부쉈습니다. 이튿날에는 자신에게 다가와 고민을 들어주겠다고 말을 건네는 동료교사를 폭행했습니다. 학교는 하루 뒤인 7일 교육청에 명씨 문제를 알렸습니다. 주말을 흘려보내고 10일에야 교육청 장학사들이 학교에 다녀갔습니다. 장학사가 학교를 뜬 직후 학교에선 이상동기 범행으로 추정되는 살인이 벌어졌습니다.

학교와 교육청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교장은 교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상부에 알리고 하명을 기다리는 ‘연락책’이었을 뿐입니다. 교감은 명씨를 자기 옆자리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지켜보는 ‘마크맨’ 역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초·중등교육법은 교장에게 교사를 지도·감독해야 하는 의무를, 교감에겐 교장을 보좌하는 책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명씨가 학교 기물을 부쉈을 때, 동료교사를 폭행했을 때, 장학사들이 학교에 왔을 때 이렇게 세 번 김양을 살릴 기회가 있었다.” 이 같은 비난을 피할 길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비판일 뿐입니다. 교장과 교감은 학생을 가르치는 전문가이지 성인의 문제 행동을 예측하는 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명씨를 두 차례 진단했던 정신과 전문의조차 범죄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을 문책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학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해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학교는 조금 독특한 공간입니다. 교장과 교감, 부장, 평교사로 이어지는 위계가 존재합니다. 동시에 교사들 모두 교육 전문가로서 수평적 관계도 형성하고 있습니다. 교장이든 선배 교사든 정당한 이유 없이 교사의 교육 활동을 침해할 수는 없죠. 학교를 총괄하는 교장의 권한과 개별 교사의 교권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갑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교직 사회도 다른 파트처럼 개인주의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학교 선후배나 과목 교사들이 맺고 있는 네트워크가 약해지고 있죠. 교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이런 성향이 더 강화됐다고 입을 모읍니다. 여기에 더해 오랜 기간 교권 침해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교사로서 사명감보다 자기보호 본능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지난 2023년 ‘서이초 사태’로 한 차례 강력하게 분출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현장학습 사고로 교사가 유죄 판결을 받자 현장학습 인솔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표출되고 있죠.

개인주의 성향과 자기보호 본능은 교원단체들의 파워 게임과 맞물려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합니다. 서이초 사건으로 결속력을 보여준 교원단체들의 입김은 거세졌습니다. 교육부와 정치권도 교원단체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죠. 선출직인 시·도교육감의 경우 교원단체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학교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교원단체로부터 민원 들어오는 것 자체를 학교 관리자의 무능으로 치부하고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교원단체 내부 경쟁은 이런 현상을 가속하고 있습니다. 교원단체들이 난립하면서 교사 유치전이 뜨겁습니다. 교사 수가 많을수록 교육 당국에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때로 서로 더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면서 경쟁 단체의 교사 수는 부풀려졌다고 비방하기도 합니다. 교사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누가 더 강하게 대응하는가’ 경쟁이 펼쳐지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한 전직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 수질 측정 업무를 보건교사와 행정실이 서로 미루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각자 노조가 뒤에 있으니 교육청은 학교가 알아서 하라며 빠졌다. 교장이 양측에 읍소해가며 한참 골치 썩인 일이 있었다”며 “이런 단순 업무도 교장이 직권으로 정하면 ‘갑질 교장’으로 찍혀 교육감에게 직보 들어가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교육부와 정치권은 제2의 김하늘양 사건을 막겠다며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예컨대 폭력성을 드러낸 교사가 나오면 교육청에서 학교에 긴급대응팀을 파견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명씨 같은 교사를 학교에서 즉시 분리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럴싸해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학교 관리자는 무기력하고 교사들은 각자도생하는, ‘기본’이 무너진 현장에서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입니다.

긴급대응팀을 부르는 1차 판단을 교장이 해야 하는데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긴급대응팀 조사 대상이 된 것만으로도 해당 교사는 평판에 타격을 입게 됩니다. 교장은 해당 교사와 원수 사이가 될 수도,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해당 교사가 교원단체에 몸담고 있다면 역공은 한층 매서울 겁니다. 교장이 몸을 사리는 순간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겁니다. 교사의 정신질환이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추면 근본적인 해법은커녕 부작용만 양산하기 쉽습니다.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와 교육 당국의 지원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고 있는지 차분하게 들여다 봐야 할 때 아닐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