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은 비잔틴 제국의 천년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자리했던 곳이다. 여기엔 교회미술사에서 전해지는 한 전승이 있다. 성모와 성자 예수를 그린 성화를 가리기 위해 베일을 설치했는데 금요일 저녁기도가 끝날 때쯤 이 베일이 저절로 올라가 그 속의 예수가 보인다는 내용이다. 다음 날엔 베일이 다시 저절로 내려왔다고 한다. 주후 11세기 교인들은 이를 ‘베일의 기적’이라 일컬었다. 성모와 성자의 모습을 베일로 가렸다 거뒀다 하는 이 동작이 하늘과 이 세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의미가 담겼다는 내용으로 추후 발전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이스탄불을 방문할 일이 있어 잠시 시간을 내 이곳의 명소 아야 소피아를 둘러봤다. 34년 전에도 이곳을 방문했다. 당시 정문으로 들어가 넓디넓은 본당 한가운데 서서 올려다본 천장이 어찌나 높고 웅장했던지 모른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니 곱절의 감동을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데 예상 밖의 말이 들렸다. ‘아야 소피아가 이슬람 사원이 됐다’는 것이다. 6세기 지어진 이래 무려 1000년 동안 세계 최대 교회의 자리를 지켰던 아야 소피아. 그러나 15세기 이슬람 정복으로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 됐고 아야 소피아 교회는 사원으로 전락했다가 1935년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교회는 아니더라도 문화유산으로서 답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0년 아야 소피아가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돼 이슬람교도가 아닌 일반 방문객은 본당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 2층 행랑을 둘러보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가능했다.
아야 소피아를 방문하는 동안 에잔(이슬람 기도 낭송의 튀르키예식 발음)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본당에서 무릎 꿇은 이슬람교도의 기도가 시작됐다. 기도가 이어지는 내내 사원 경비원은 관광객들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재차 경고했다. 일정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이들은 건물을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뒀을까.”
아내의 질문을 들으며 내겐 다른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아야 소피아가 사원으로 전환된 걸 왜 몰랐을까.” 이 소식이 실린 자료와 기사를 살피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접했다. 아야 소피아가 박물관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하기 전인 2005년, 미국 정계에 진출한 그리스 출신 정치인 크리스 스피로는 미국 정부를 통해 튀르키예 정부를 설득, 압박해 아야 소피아를 최초의 용도인 교회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그렇지 않아도 강경화 추세를 타던 튀르키예 내 이슬람교도를 자극해 아야 소피아의 이슬람 사원 전환을 촉진했다고 한다. 스피로가 원망스러운 대목이었다.
정말 아이러니는 따로 있다. 아야 소피아의 본당 장축단(長軸端)에는 모자이크로 새겨진 성모와 성자 예수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 건축물의 미술 장식을 없앨 순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슬람교도가 예수 아래에서 기도할 수도 없어 기도 시간에 맞춰 흰색 천을 드리워 모자이크를 가린다. 정말일까 싶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살펴봤다. 다행히 장축단이 찍힌 사진이 두 장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흰 천이 모자이크 앞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흰 천, 이는 다름 아닌 베일이었다. 튀르키예 정부가 아야 소피아를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하면서 의도치 않게 예수의 모습을 베일로 가린 것이다.
‘베일의 기적’에 힘입어 또 다른 아이러니를 상상해 본다. 예수를 가리려고 베일을 설치한 아야 소피아에서 그리스도의 하늘과 이 세상이 이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상상이다. 그러면 더는 스피로를 원망치 않아도 될 것이다.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