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여러 관세 인상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4일부터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다음달 12일부터 모든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가 부과된다. 이에 더해 지난 18일에는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에도 25% 이상 관세를 부과할 계획임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에 속도를 높이는 이유는 2년 뒤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조기에 경제정책의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재선의 기회가 없으므로 레임덕을 막으려면 중간선거 승리가 절실하다. 따라서 관세 인상을 통해 값싼 수입품 유입을 차단하고 외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늘려 노동자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연이은 보호무역 조치들은 지난 1기 행정부 정책에 대한 중국의 대응책을 철저히 분석한 결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이 관세를 높이지 않은 국가 중 인건비가 낮은 곳에 생산기지를 건설해 미국의 관세 장벽을 우회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멕시코다. 멕시코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있어 중국이 멕시코로 중간재를 수출한 뒤 멕시코에 건설한 공장에서 최종재를 만들면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멕시코산 수입품 25% 관세 부과 추진은 이런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할 목적도 포함됐다.
또한 중국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C커머스)을 통한 수출로 미국의 800달러 미만 수입 물품 관세 면세 제도를 이용해 관세를 회피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면세 혜택 폐지를 추진하는 것도 중국의 관세 회피 경로 차단이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미국의 추가적인 보복관세 부과를 막기 위해 농산물 수입 검역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여 1기 행정부의 대중국 관세 인상에 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중국의 대응책을 분석한 결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양국과 교역 비중이 크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중국의 대응까지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기존 관세 장벽 우회 수출 경로를 차단하고 있으므로 중국은 새 우회 경로를 개척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가 체결돼 있어 중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건설해 최종재를 생산하면 한·미 FTA를 활용해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무턱대고 중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가 우리나라도 멕시코처럼 미국의 중국 우회 수출 차단을 위한 관세 인상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미국의 관세 인상이나 한·미 FTA 재협상 압박 가능성까지 고려해 중국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에 신중해야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도 최근 150유로 미만 수입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 폐지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150달러 이하 수입품에 대해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우리나라에 C커머스를 통한 저가 상품 수출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또 C커머스가 수집하고 반출한 국내 소비자 정보를 중국 기업들이 상품 개발과 마케팅에 활용할 경우 우리 기업들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150달러 이하 수입품에 대한 관세와 부가가치세 면제 제도를 조속히 개편하고, 국내에 진출한 C커머스의 고객 정보 국외 반출을 통제해야 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