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 가늠자’ 재판관 질문 보니… 국회 장악·체포 의혹·국헌 문란 집중 추궁

입력 2025-02-23 18:59 수정 2025-02-23 23:47
연합뉴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10차례 진행하며 전직 군경 지휘부 등 증인들에게 국회 장악·해산 시도, 정치인 체포 지시 등 쟁점을 집중 질문했다. 재판관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군병력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나” “왜 국회의원들을 막았나” 등 송곳 질문을 던지며 핵심 쟁점을 정리했다. “윤 대통령이 ‘의원 끄집어내라’ 지시를 했다”고 증언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는 더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는 등 사실관계 파악에 주력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등 증인신문을 거치며 계엄 선포의 절차적 하자는 큰 논쟁의 여지 없이 분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측과 윤 대통령이 첨예하게 맞붙은 ‘의원 끌어내라’ 지시 여부 역시 헌재가 직권 채택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이 관련 지시 하달을 인정한 점을 감안할 때 성립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① 국회 장악·해산 시도

재판부는 김 전 장관 등 증인들에게 ‘국회 군병력 투입’ 사실관계를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윤 대통령 측은 질서유지 목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재판관들은 국회 기능마비 목적이 있었는지 확인한 것이다. 헌법 77조는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인정하지만, 절차와 내용에 대해서도 명시하고 있다.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대해선 특별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입법부인 국회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울러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하고 있다. 재판관들이 국회 장악 및 해산 시도의 사실관계 확인에 주력한 것은 이를 통해 비상계엄의 위헌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정형식 재판관은 지난달 23일 김 전 장관 증인신문에서 “질서유지 목적이면 애초 (국회) 본청 건물 안으로 왜 병력이 들어갔나. 군병력이 굳이 왜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나”라고 물었다. “충돌이 생겨 본청 건물 안에 군을 투입했다”는 김 전 장관 답변에 “(군이) 들어가서 충돌이 생긴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 전 장관이 “의원 출입 전면 금지 의미가 아니다”고 하자 김형두 재판관은 “의원들을 막았다가 통과시켰다가 또 막았다”고 짚었다. 국회 내부 병력 진입 및 의원 출입 통제가 ‘질서 유지’와 거리가 있지 않느냐는 점을 따진 것이다.

윤 대통령 지시 대상이 의원인지 인원 혹은 요원인지 논란이 일자 정형식 재판관은 지난 6일 “기억나는 대로만 말하라”며 직접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곽 전 사령관은 실제 들은 단어는 인원이라면서도 정확한 워딩은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였다고 했다.

‘끌어내라’의 맥락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재판부는 유일하게 직권 증인을 불렀다. 조성현 1경비단장은 지난 13일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해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정 재판관 질문에 “그렇게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답했다.

곽 전 사령관과 조 단장 증언의 맥락이 일치하고, 조지호 경찰청장 역시 ‘계엄 해제 의결 전 윤 대통령의 의원 체포 지시가 있었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던 만큼 재판부가 국회 의결 방해 의혹을 사실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헌재 헌법연구부장 출신 김승대 전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23일 “특전사 정예부대가 헬기를 타고 왜 국회에 투입됐겠느냐”며 “설령 끌어내라는 말이 없었다 해도 정황상 국회 입법권 침해가 명백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② 정치인 등 체포 지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메모와 관련된 체포조 의혹도 양측이 첨예하게 다툰 부분이다. 홍 전 차장은 이례적으로 탄핵심판에 두 차례 증인으로 출석했다. 윤 대통령은 평화적·경고성 계엄을 강조해 왔는데, 체포 지시가 사실일 경우 주장의 신빙성을 잃게 된다. 대통령이 국가긴급권을 오남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홍 전 차장은 수사기관과 국회 등에서 윤 대통령이 전화로 “싹 다 잡아들여”라고 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대통령 전화 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전화해 구체적 명단을 들었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장도 아닌 차장에게 그런 지시를 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김 재판관은 지난 13일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 홍 전 차장에게 많은 지시를 했다는데, 그리고 바로 국정원장에게 전화해 ‘미국 출장 어떻게 하실래요’라며 참 한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라며 “잘 이해가 안 간다”고 의문을 표했다. 김 재판관은 또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명단 14명을 전해 듣고 수첩에 적었다’는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 증언을 언급하며 ‘홍 전 차장이 (원장에게) 심각하게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복수의 관계자가 체포 명단을 언급한 점을 고려할 때 조 원장이 추가로 들은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 차원으로 해석된다.

홍 전 차장이 메모를 쓴 장소를 국정원장 관저 공터에서 자신의 사무실로 번복하면서 논란도 있었다. 다만 심판정에서 공개된 여 전 사령관과 조 청장 진술조서 등을 종합하면 체포명단 존재 사실 자체는 분명하게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 전 사령관은 검찰에서 “홍 전 차장에게 (명단) 위치 확인을 도와 달라고 얘기했다. 홍 전 차장이 일반 휴대전화로 전화해 찜찜해서 명확히 기억난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도 검찰에서 ‘여 전 사령관에게서 체포 명단과 위치추적 요청을 받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 청장은 지난 20일 증인신문에서 대부분 진술을 거부했지만 검찰 조사 때 사실대로 얘기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이미 홍 전 차장 메모와 유사한 명단이 다른 쪽에서 확보됐다. 메모 작성 장소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라고 했다.

정 재판관은 앞서 김 전 장관에게 “증인이 ‘몇명 동정을 파악해 조건이 되면 체포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체포라는 얘기가 반복적으로 나오게 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으로 풀이된다. 김 전 장관은 “동정을 확인하다 위반 우려가 있으면 예방 차원에서 차단해야 하고 그럼에도 필요하면 체포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③ 선관위 장악 지시

윤 대통령이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해 장악하라고 지시했는지도 중요 쟁점으로 꼽힌다. 정 재판관은 지난 4일 여 전 사령관 증인신문 당시 “대부분 진술을 거부하는데, 선관위 병력 출동은 맞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 전 사령관이 “상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답하자 정 재판관은 “국방장관이 ‘그냥 가라’ 이렇게 (지시)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라고 했다. 지시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인데, 여 전 사령관은 답변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같은 날 선관위에 군을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부정선거 의혹 등과 관련해 선관위 시스템 점검 차원에서 병력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 내내 부정선거 의혹 쟁점화를 시도했다. 재판관들은 선관위 장악 시도 배경으로 꼽힌 부정선거 의혹 관련 백종욱 전 국정원 3차장과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에게는 한 차례도 질문하지 않았다. 애초 부정선거가 탄핵심판의 쟁점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부정선거가 있다면 대통령이 얼마든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했다”며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④ 계엄 선포 요건 및 절차 하자

헌재는 한 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을 불러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도 따졌다. 헌법 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이뤄지고 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하도록 규정한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 흠결이 있고 간담회 수준이었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한 총리는 지난 20일 김 재판관 질문에 “기본적으로 통상 국무회의와는 달랐다는 취지”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국무회의였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회의록이 없었고 국무위원들 부서도 없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헌재는 최종적으로 심판정 증언과 검찰 신문조서 등 증거 채택된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사실관계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계엄 선포가 국헌문란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재판관들 질문이 집중된 만큼 내란 쟁점에 대한 판단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연구관 출신 이황희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실제로 무력화하려고 했다는 게 탄핵심판에서 증명됐다면 심각한 헌법 위반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윤수 이형민 송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