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평가됐던 중산층에서 12·3 비상계엄을 기점으로 기류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생활 수준이 안정적이어서 보수 선호도가 있던 중산층이 국민의힘보다 더불어민주당을 더 지지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정치적 중도층에 이어 경제적 중산층의 민심마저 야당으로 무게가 옮겨가면서 여권의 지지율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실시한 조사에서 자신의 생활 수준을 ‘상’ 혹은 ‘중상’으로 밝힌 응답자들 가운데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답변은 40%로 집계됐다. 같은 계층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응답자(38%)보다 오차범위 내지만 근소한 우위다.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 생활 수준은 ‘상·중상·중·중하·하’ 5단계로 나뉘는데, 업계는 통상 ‘상’이나 ‘중상’ 응답자를 중산층으로 분류한다.
이런 흐름은 비상계엄 전후로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계엄 선포 직전 조사였던 지난해 11월 넷째주 조사에서 중산층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42%로, 민주당(28%)보다 14% 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비상계엄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 12월 첫째주 조사에서 중산층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29%로 주저앉은 반면 민주당 지지도는 37%로 뛰었고, 연말까지 민주당이 오차범위 밖 우세를 이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 적법성 논란 등으로 보수가 결집했던 1월 셋째주에는 국민의힘 48%, 민주당 27%로 중산층 표심이 급반전했지만 일주일 뒤 다시 민주당 우위(국민의힘 37%, 민주당 41%)로 역전됐고 최근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복수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23일 “고학력자가 많은 우리나라 중산층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고학력 중산층의 경우 계급적으로는 보수 성향을 띠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중도 내지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도 “소득이 많은 40·50대 고학력자들은 과거 학생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다른 세대에 비해 진보 성향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중산층에서의 민주당 강세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근 ‘우클릭’ 행보와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여권의 중도층 지지율 하락도 계속되고 있다. 당초 지난해 비상계엄 이전부터 중도층 사이에선 민주당 강세가 이어졌다. 2월 둘째주 조사에서 오차범위 내(국민의힘 32%, 민주당 37%)로 좁혀졌던 양당의 중도층 지지도 격차는 지난주 조사에서 다시 20%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중도층은 대선 때마다 ‘스윙보터’ 역할을 해 왔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한 여당 관계자는 “민주당은 빈말일지언정 ‘중도 코스프레’를 꾸준히 하는데 우리는 지지층만 바라보고 탄핵 반대 목소리만 냈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중도를 겨냥해 정책을 내고 메시지 수위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