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민 중심으로 핵심 인재를 대거 양성하는 정책이 최근 속속 성과를 거두고 있다. 딥시크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기술 굴기’가 전 세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을 위협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는 것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겼던 국내 반도체 기술 수준도 최근에는 중국에 뒤처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3일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ICT 브리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주요 대학의 AI 관련 학과 모집 인원은 지난해 4만3333명으로, 2019년 1232명에 비해 35배 이상 증가했다. 대학에서 집중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고급 인력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상위 20% 수준 AI 연구자 중 중국 출신은 2019년 29%에서 2022년 47%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0%에서 18%로 감소했고, 한국은 증감 없이 2%에 그쳤다.
해외에서 공부한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는 연구자들도 많다. 정부와 기업에서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중국 빅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AI 연구원의 평균 연봉은 2억~5억원에 달하고, 최근 샤오미는 딥시크 개발자 뤄푸리에게 연봉 1000만 위안(약 2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바바는 지난 10년간 총투자액보다 많은 자금을 향후 3년간 AI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고, 바이두와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 역시 AI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투자한 자금은 기술 개발뿐 아니라 인력 채용에도 쓰일 전망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이미 넘어섰다는 전문가 평가도 나왔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중국이 첨단 패키징을 제외한 모든 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고 기술 선도국을 100%로 봤을 때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로 중국의 94.1%보다 낮은 3위였다. 고성능·저전력 인공지능 반도체기술도 한국이 84.1%로 중국의 88.3%보다 낮았다. 앞서 2022년 진행된 기술 수준 평가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있다고 평가했던 대부분 분야에서 2년 만에 순위를 내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고, 해외 인력 유치 등 인재 유치를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인력 양성 정책뿐 아니라 산업계의 인력 양성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해외 전문 인력 유치를 위한 이민 정책 등 인재 확보를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AI 필수 인재 수요는 2030년 600만명이 필요하지만, 현 추세로는 400만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이 해외 AI 인재들을 대거 채용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정보통신(IT) 업계 관계자는 “AI나 반도체 분야의 핵심 인력은 전 세계적으로도 몇 명 없다 보니 유치 경쟁이 치열한 편”이라며 “안 그래도 적은 국내 전문가가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면 기업뿐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도 손실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기업과 대학이 협력해 연구 인력과 실무형 전문가 육성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기술 혁신과 산업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