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2635곳 중 111곳만 공시… 시총 1위 삼성전자도 외면

입력 2025-02-24 02:37

정부가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을 발표한 지 오는 26일로 1년을 맞지만 진행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밸류업 본공시를 마친 기업은 모두 111곳이다. 코스피 상장사 849곳, 코스닥 상장사 1786곳을 통틀어 4%에 그치는 참여율이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3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아직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았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었음을 감안해도 참여가 다소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며 “더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해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올해부터 매년 밸류업 우수 기업 10곳을 선정해 모범 납세자 선정 시 우대, 공동 투자설명회(IR) 참여 우선권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다지 큰 혜택이 되지 못한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정부는 주주 환원 확대 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26일 상장기업의 밸류업 공시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와 자발적 참여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밸류업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업의 소유와 지배가 일치하는 한국의 특수한 기업 구조에서는 더 확실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가 많아 주주환원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지주들이 비교적 밸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도 일반 기업과 달리 소유 구조가 분산돼 오너가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자사주 매입 시 바로 소각토록 하는 방안도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주주가치 환원을 내걸고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지 않아 오너의 지배력만 높이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실행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이를 다시 소각하겠다고 공시했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행을 미룬 상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동시에 이뤄져 회계상 ‘자사주’ 계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 같은 관행이 자리잡지 못한 한국은 기업들이 스스로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사주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차단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