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너머의 의미

입력 2025-02-25 00:30

몇 년 전 64세인 한 여선교사님이 병원을 찾아왔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린 증상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이분은 30대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열 살 무렵 혈액암에 걸린 아들은 수년간 병상에서 지나다 세상을 떠났다. 이 투병 기간 선교사님은 아들에게 늘 왼쪽 허벅지를 머리 받침으로 내어줬다.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허리 세울 틈도 없이 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의 허리는 여전히 굽어 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척추 자체는 비교적 온전했지만 왼쪽 허벅지와 허리의 통증은 그분의 일상을 방해하고 있었다. 선교사님은 “허벅지의 아픔은 곧 아이의 존재를 의미한다”며 “아이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으면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로서 영원히 미안할 것 같다”고 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깊이 자리 잡은 경우다. 아이가 떠난 후에도 왼쪽 다리의 통증은 마음의 상처와 함께 남아 있었다.

이 경우는 물리적인 통증을 넘어선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일깨웠다. 병원에 다니면서 괜찮다는 말만 들어온 그분에게 나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할 순 없었다. 선교사님의 고통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문제였다.

사이코소매틱스(psychosomatics)는 신체적 증상이 정신적·심리적 요인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개념이다. 인간의 신체는 마음과 정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스트레스 슬픔 불안 같은 감정이 지속하면 신체의 특정 부위에 통증이나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선교사님의 왼쪽 허벅지와 허리에 남은 통증은 자세나 근육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마음에 품었던 죄책감과 슬픔의 표현이다.

이런 사례는 특히 노년층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노년 시기에 정서적 건강은 노화 속도를 늦추거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럴 땐 약물이나 물리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겪는 통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근원을 치료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로 가는 길이다.

선교사님과 대화 중 나는 그분이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이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신체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치료라고 느꼈다. 나는 선교사님에게 아들에 대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드렸다. 이후 심리 상담을 병행하며 아들에 대한 기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뒀다.

종교적 믿음과 신앙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아들을 맡겼다는 신앙심은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죄책감이 있었다. 상담 과정을 통해 선교사님은 아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충분히 값진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준 사명임도 받아들였다. 이는 선교사님의 정서적· 영적 치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정서적 건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신체의 통증은 마음의 상처와 연결돼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함께 마음을 돌보고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며 영적 평화를 추구하는 게 필요하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는 면역 체계의 강화와도 연결된다. 긍정적인 정서와 신앙심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신체적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선교사님 이야기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치료는 단순히 육체적인 증상을 없애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삶의 맥락과 정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노인 환자에게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정서적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내가 아픔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이분에게 큰 위로가 됐다. 종교적 위안을 넘어 삶을 더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로운 노년을 살아가길 바란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