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민주당 후보 린든 존슨에게 기록적 참패를 당했다. 확보 선거인단 수에서 ‘486명(존슨) vs 52명(골드워터)’, 득표율은 ‘61.1% vs 38.5%’의 격차였다. 충격을 받은 보수 진영은 와신상담 끝에 10년 후인 74년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등 우파 가치를 알리기 위한 ‘보수정치행동회의(CPAC)’를 창립했다. 초대 회의 기조연설을 맡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6년 후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매년 2월 열리는 CPAC은 초기엔 학술 토론회 성격을 띠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최대 보수정치 행사로 우뚝섰다. 어느덧 보수 정치인의 등용문이자 경력 관리 무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최대 수혜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TV 리얼리티쇼 진행자로 활동하던 2010년 CPAC 초대를 처음 받았다. 특유의 독설로 인기를 끌더니 이듬해 CPAC에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CPAC은 트럼프의 정치 데뷔 무대였다.
하지만 트럼프 등장 이후 CPAC이 음모론과 극단주의 온상이라는 평을 듣게 됐다. 트럼프는 2011년 이곳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니라고 했다. 대선에서 패해 퇴임한 직후인 2021년 2월 CPAC에선 “지난 대선은 조작됐다. 선거 절차가 부패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부채질했고 재선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2025 CPAC’은 트럼프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 등 미 보수계 인사들 외에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전 총리 등 해외 우파 지도자들도 대거 참석,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려한 재기가 준 영향일테다. 한국보수주의연합(KCPAC) 관계자들도 여기서 별도 부스를 만들어 한국의 부정선거 의혹,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정당화를 강변했다. 미 우파 인사들이 이에 맞장구쳤다. 평소 같으면 황당한 일로 여겼겠지만 CPAC의 위세, 트럼프의 성공을 본다면 함부로 속단해선 안될 듯 싶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