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주도로 빠르게 출구를 찾아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쟁의 마무리를 모색하는 방법이 향후 국제질서와 세력 균형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3개국이 서 있다.
최근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속도를 내기 위해 미·러 간 협의와 미국과 우크라이나·동맹국 간 협의를 나눠 진행하는 ‘이중 트랙(dual-track)’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종전 협상이 러시아에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며 미·러 협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미·러 협상 장소 제공 등 사우디의 중재자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사우디를 선택했을까. 트럼프, 블라디미르 푸틴, 빈 살만 세 지도자 간 개인적인 친분과 더불어 미국의 대내외적 이해관계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적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 ‘반값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내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은 물가안정 및 미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에 기여하고 추가 관세 부과에 따른 국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한편 에너지 수출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감소 및 대외적 영향력 유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 정책의 성공적 시행은 미국 내 경제안정을 이끌며 2026년 중간선거 승리의 초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 3대 산유국이 미국, 사우디, 러시아라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우호적인 에너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출범 초기 대외 관계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러시아와 사우디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중요한 국가들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는 대(對)중국 견제에 있다. 따라서 장기화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중국 견제에 미국의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현재 러·우 전쟁의 장기화와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로 인해 ‘한·미·일 vs 북·중·러’의 진영 대립이 고착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전쟁을 러시아에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끝내고 미·러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의 입지를 좁히는 것은 미국에 유용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러시아의 중재를 통해 북·미 관계를 개선해 진영 내 중국 영향력을 더욱 축소시킨다면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우디와의 협력을 증대하고 사우디의 국제적 위상을 부각시키는 것은 미국의 중동 세력 재편 구상에 필수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토대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아브라함협정 2.0’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개선은 미국의 대이란 적대시 정책과 맞물려 중동 내 세력 균형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에 우호적인 이스라엘과 사우디 진영의 역내 영향력 확장과 이란 세력의 영향력 감소를 통해 미국이 중동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미국의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개의 전쟁이 출구를 찾아가며 미국의 영향력이 재확인되고 러시아와 사우디의 존재감과 위상이 부각되는 것은 한국 외교에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미 에너지 및 방산 협력,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한·러 관계, 한·사우디 관계 등 우리의 전략적 이익을 담보하기 위한 복합적이고 세밀한 준비가 요구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