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가치 성역화한 진보
민주화는 껍데기라는 보수
서로 상대가 잘못이라고 주장
그러나 환멸과 배신감 버리고
숨어서 여론 조작하는
진짜 민주주의의 적에 맞서야
민주화는 껍데기라는 보수
서로 상대가 잘못이라고 주장
그러나 환멸과 배신감 버리고
숨어서 여론 조작하는
진짜 민주주의의 적에 맞서야
비상계엄령이 여섯 시간 만에 해제되고, 내란죄 수사와 탄핵 심판 정국이 시작될 즈음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뜻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지금, 그것도 민주주의가 공고해졌다고 평가받는 이 시점에 돌연 계엄령인가. 누구나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구속되고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뚜렷하게 양분됐다. 한쪽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의 근본적 동기가 국민 계몽령이었다고 믿는다. 두 진영을 가르는 큰 차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다. 전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성역화하며, 자신들이 그 가치를 독점한다고 여긴다. 반면 후자는 민주화 이후 4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껍데기만 남았다는 분노로 광장에 나선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한 정치제도 중 가장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내부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제도적 부패에 매우 취약하다.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그런 위기에 처해 있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견제받지 않는 의회 권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좌파 포퓰리즘 체제로 끌어가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마저 이념적 목표에 따라 변질시키고 있다. 다수당의 입법권력 남용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무력화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반민주적 극우로 낙인찍는다.
한국 민주주의를 더욱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어둠의 권력 카르텔’, 즉 딥 스테이트(Deep State)다. 전 세계적으로 이들은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 결과를 관리하며, 권력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뒤흔든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본격적으로 부상한 부정선거 논란은 대한민국 역시 예외가 아님을 말해준다.
2020년 실시된 21대 총선 이후 역대 최다인 125건의 선거무효 소송이 제기됐다. 그중 다섯 개 선거구에서만 제한적으로 실시된 재검표 과정에서 빳빳한 신권 다발 형태의 ‘형상 기억’ 투표지, 일본 국기 모양으로 뭉개진 도장이 찍힌 투표지, 인쇄 상태가 불량한 투표지 등 여러 비정상적 현상이 발견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하며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2013년 도입된 사전투표제가 외부 세력의 해킹 위협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전 고위 간부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디지털 시대에 사이버전은 국가 안보의 핵심 변수다. 그렇다면 외부 세력이 대한민국 선거를 특정 정파에 유리하게 조작할 가능성은 과연 허무맹랑한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가. 선거의 완결성을 지키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에서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는 1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 의무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한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부조리를 경험하며 환멸을 느낀다. 한 전투의 후퇴 과정에서 반역자로 몰려 총살될 위기에 처하자 탈영을 감행하고 연인 캐서린 바클리와 함께 스위스로 도피한다. 그러나 캐서린은 출산 중 사망하고, 아이마저 세상을 떠난다. 모든 것을 잃은 헨리는 절망과 체념에 빠진다. 소설의 제목은 ‘무기(arms)’와 작별한다는 의미에서 반전 메시지를 내포하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이의 ‘포옹(arms)’을 잃는다는 은유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필자는 이 작품을 떠올리며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가 알던 민주주의가 거짓이라는 것에 환멸과 배신을 느끼고, 소중한 이를 잃은 뒤 민주주의에 작별을 고하고 체념의 늪에 빠진 것인가. 아니면 “어둠의 권력 카르텔 때문에” 안 된다는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그런 카르텔에도 불구하고”라는 의지로 맞설 것인가.
“뭐가 진짜인지 모르면 저항조차 할 수 없다(If you don’t know what’s real, you can’t resist).”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에 나오는 이 대사는 울림을 준다. 나는 지금 진실과 거짓의 기로에 서 있다. 이미 선택은 했다. 이제 그 선택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할 뿐이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