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딥페이크와 국가모독죄

입력 2025-02-24 00:32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서 상영된 윤 대통령 부부의 딥페이크 영상을 놓고 보수 진영이 들끓었다. 문제의 가짜 영상에는 윤 대통령이 속옷을 입고 맥주를 마시거나 노출이 심한 김건희 여사와 함께 공군 1호기에서 함께 내리는 장면이 있다. 국민의힘에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는데, 이와 비슷한 논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전시회에 박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나체를 담은 그림이 걸렸다. 그림에는 잠든 박 전 대통령 곁에 최순실씨가 주사기 다발을 들고 있다. 침실 밖으로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이 보인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발가벗겨진 대통령은 또 있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2019년 10월 속옷 한 장만 입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한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에서 문 전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나의 즉위를 축하하는 축포를 터뜨리고 있구나”라고 말한다. 극우 커뮤니티에서 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는 ‘문재앙’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패러디한 풍자라는 게 한국당 측 설명이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패러디가 늘 있었으니 딥페이크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패러디 기술은 명화 혹은 동화를 모티브로 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대통령 외양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거의 그대로 재현해 합성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정교한 딥페이크는 가짜뉴스로 퍼질 때가 많다. 누군가를 발가벗겨 조롱하거나 성적 대상화하는 딥페이크 콘텐츠에는 반드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윤 대통령 부부의 딥페이크 영상에 대해서도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자칫 최고권력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나 풍자를 제한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광주 금남로 집회에서 문제의 딥페이크 영상이 재생된 이튿날인 지난 16일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며 “국가원수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라고 밝혔다. 또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한 자, 집회 현장에서 재생한 자, 이를 현장에서 방관한 자 모두에게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영상 제작 및 유포 관련자들에게는 강력한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례적인 대통령실의 분노는 국가모독죄로 비판 여론을 틀어막았던 유신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국가모독죄는 내국인이 국외에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했을 경우 등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1975년 만들어진 뒤 여야 합의로 1988년 폐지된 법이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국가모독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삭제된 지 27년이나 지난 형법 조항에 내려진 헌법재판관 전원일치의 위헌 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을 재확인한 것이다.

최고권력자를 향한 비판과 비방은 어느 정권도 피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이 같은 행위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식의 태도가 시대착오적이다. 무엇보다 딥페이크 영상 논란과 무관하게 금남로 탄핵 찬성 집회에 모여 있던 1만명 이상의 시민을 싸잡아 잠재적 범죄자 대하듯 으름장 놓은 것은 과해 보인다. 대통령실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2010년 11월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린 대학 강사에 대해 경찰이 영장 치며 공안사건 수사하듯 조사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경택 사회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