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尹 vs 李 2차전’을 피하려면

입력 2025-02-24 00:39

탄핵 반대와 조기 대선 사이
방향 정하지 못한 여권 주자들
윤 대통령, 통합 메시지 내야

대놓고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여권도 이미 조기 대선 분위기다. 점심 저녁으로 만나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저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경쟁해 승산 있는 차기 여권 주자는 누구인지 전망을 내놓는다. 탄핵 인용 시 치러질 대선 경선은 길어도 20일을 못 넘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그런 단기전에서 보수 당원들의 지지가 쏠릴 후보는 누구일지 셈도 해본다. 대선 캠프를 차리기 위한 사무실을 물색 중이라는 몇몇 주자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조기 대선 성사 때 출마가 예상되는 여권 유력 후보군만 해도 손가락 10개가 모자랄 지경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유승민 전 의원은 물론이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을 포함한 시·도지사들, 안철수 의원 등도 후보군으로 언급된다. 아무래도 헌법재판소가 ‘이 정도 계엄으로는 대통령을 파면할 수 없다’고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을 여권 내에서도 낮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거대야당 민주당의 탄핵·입법 폭주, 헌재 탄핵심판 절차에서의 공정성·형평성 시비 등을 아무리 고려한다 해도 탄핵기각 ‘플랜A’만 들고 기다리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여권 주자들이 뛸 공간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본선뿐만 아니라 경선 작전부터 세워야 할 여권 주자들에게 강성 보수 지지층의 탄핵반대 여론은 부담이다. ‘먼저 머리 들면 경선 필패’라는 말이 나올 만큼 탄핵인용을 가정한 움직임은 배신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도 한몫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시점부터 보수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구명 메시지를 잇달아 내왔다. 이에 호응하듯 장외에서 매주 열리는 탄핵반대 집회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더 격렬해지고 있다.

여권 주자들의 이런 현실은 “민주당은 중도보수” 발언까지 꺼내며 일찌감치 중도 평정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비교되는 지점이다. 추가경정예산안에 각종 세금 정책까지 던지며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이 대표에게 끌려만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권 주자들의 메시지는 계엄과 탄핵에 묶여 더 나아가지 못한다. “윤 대통령이 돌아오기를 바란다”(김문수 고용부 장관), “차기 대선 준비가 윤 대통령의 탄핵인용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당원과 국민이 혜량해 주셔야 한다”(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머물러 있다. 경쟁자는 한참 앞서 뛰고 있는데, 여권 주자들은 모두 윤 대통령의 ‘출발’ 신호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여권 주자를 평가할 만한 뚜렷한 정보들이 나오지 않다 보니 지지율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 지난 21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2월 3주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 많은 여권 주자 중 두 자릿수 지지율을 확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흐름이 지속한다면 탄핵인용 시 치러질 조기 대선이 ‘윤석열 vs 이재명 2차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조기 대선이 헌재의 결론에 불복하는 보수 여론과 진보 진영의 대결로 점철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12·3 비상계엄 선포의 근본적 원인이었고, 탄핵 국면에서 격해진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이기도 하다. 작금의 한국 사회의 분열상을 치유하기 위한 통합의 정치가 아니라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심리적 내전’이라는 말이 거론될 만큼 심각한 분열의 정치를 끊어낼 책임도 윤 대통령에게 있다. 많은 전문가가 오는 25일 진행될 헌재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윤 대통령이 낼 메시지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의 혼란을 야기한 12·3 비상계엄에 대한 진솔한 사과, 헌재의 어떤 결론에도 승복하겠다는 약속,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는 조언들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탄핵인용 선고 시 그 이후의 일은 국민의힘과 여권 차기 주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더는 계엄이라는 족쇄로 보수 진영의 발을 묶어서는 안 된다.

정현수 정치부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