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 여야의 대표들이 20일 한 자리에 모여 반도체 특별법·연금개혁·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등 시급한 현안들을 논의했지만, 쟁점 현안에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다만 추경 편성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이뤄 실무협의를 통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반도체 특별법과 연금개혁 문제도 실무협의로 넘겨졌다. 탄핵 정국에서 국정을 협의하기 위한 ‘4자 회담’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점 정도가 의미인 셈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116분간 회담을 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여야 대표가 여·야·정 국정협의회를 열기로 합의한 지 51일 만이다. 여·야·정 대표들이 격론을 벌였지만 주요 쟁점에서는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서 공동 합의문은 나오지 않았다.
최 권한대행은 모두발언에서 “미국, 일본 등 주요 경제국들은 반도체 첨단 인력들이 근로시간 제약 없이 연구에 매진 중”이라며 “이것이 포함되지 않으면 반도체 특별법이 아닌 ‘반도체 보통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뜻이다.
권 비대위원장은 주 52시간제 예외 규정을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노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우 의장은 “주 52시간 문제 때문에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걸 희망하지 않는다. 합의된 건 합의된 대로 처리하고 나머지를 논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박태서 국회 공보수석은 회담 뒤 “여·야·정 모두 추경 필요성에 공감했다. 민생 지원과 AI(인공지능) 등 미래산업 지원, 통상 지원 등 3가지 원칙에 입각해 시기와 규모 등 세부 내용을 실무협의에서 추가 논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추경 편성에 앞서 지난해 야당의 일방적 예산 삭감에 대해 유감 표명을 요구했지만, 민주당 측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국가 안보와 방산 수출의 컨트롤타워 공백 해소 차원에서 현재 공석인 국방부 장관 임명을 건의한 데 대해 민주당은 “국방장관 추가 임명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며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는 “계엄을 또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반대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이 제안한 국회 연금개혁특위 구성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현재 모수개혁이 상임위(보건복지위)에서 논의되고 있지 않나”며 반대했다. 반면 민주당이 제안한 국회 통상특위에 대해서는 정부와 여당이 “(정부 내) 통상 담당 인력이 얼마 없는데 특위를 구성하면 업무보고 등 실무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이날 회담에서는 국회 윤리특위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특위 구성에 대한 합의는 이뤄졌다. 국회 기후특위 구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종선 이동환 이강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