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 中소녀 “엄마가 밖에선 중국말 쓰지 말래요”… 도 넘은 ‘혐중’

입력 2025-02-21 02:40
중국인들이 많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거리가 20일 한산한 모습이다. 최근 중국 혐오 정서가 확산하면서 지역 상권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박모(45)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이곳 특성상 중국어로 된 안내판들이 있는데 한 남성이 “여기도 중국에 먹혔냐. 사장도 중국인이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인근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장모(32)씨는 ‘삿대질 공격’을 받았다. 장씨는 20일 “판촉 행사를 위해 관광객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었는데 길 가던 남성이 갑자기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삿대질하고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중국 혐오 정서가 확산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이나 중화권 출신 국내 거주민 사이에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부쩍 늘어난 반중 정서 배경으로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중국의 선거 개입 의혹이 꼽힌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탄핵반대 집회와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중국이 부정선거와 한국 장악 시도의 중심에 있다고 강변한다.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참가자들은 ‘멸공’ 구호를 외친다.

이날 중국인이 많은 명동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광진구 자양동 일대에서 만난 상당수 주민과 상인들은 혐중 정서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명동 일대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고, 중국어 안내판도 많이 사라졌다.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선 ‘너희 나라나 잘해라. 내정간섭 하지 마라’는 팻말을 든 유튜버가 춤을 추며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대사관 바로 옆 외국인 학교는 경비가 한층 강화된 모습이었다.

대사관 경비를 맡은 경찰 A씨는 “최근 한 유튜버의 대사관 난입 시도 등으로 더 주의 깊게 경비를 서고 있다”며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인원을 보강했다. 근무도 더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사관 옆 한국한성화교소학교에서는 최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누군가 중국계 외국인이라고 공격하는 상황을 조심하라’고 안내했다. 하교하던 중국 국적 진모(11)양은 “SNS를 통해 ‘태극기 집회’ ‘멸공’ 등의 단어가 중국에 대한 공격임을 알게 됐다”며 “부모님도 밖에선 최대한 한국말을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대만 국적 이모(11)양도 “부모님으로부터 같은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중화권 출신 국내 거주민들은 중국에 있는 지인들에게서 몸조심하라며 걱정하는 안부인사를 듣는다고 전했다. 대림동에서 통신 매장을 운영하는 정모(55)씨는 “유튜브에서 부정선거 등 중국 얘기가 많이 나와 현지 지인들이 혹시나 공격받진 않을지 걱정한다”고 말했다.

자양동의 한 여행사 대표 B씨는 “중국에 있는 지인들이 탄핵 찬반 집회가 격해지면서 한국에서 내전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도 한다”며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한국에 오는 걸 두려워해 관광객도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건국대에 다니는 대만 국적 C씨는 “중화권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을 체감한다”며 “지하철에서 조용히 있거나 일부러 한국어만 쓴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중국 혐오나 가짜뉴스에 대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의 정치 개입 등은 명백히 사실이 아닌데 무분별하게 퍼져나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혐오 발언을 한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정비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글·사진=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