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는 줄 알았는데 ‘마약운반’에 이용 한국인 속인 마약 총책, 국정원에 덜미

입력 2025-02-20 19:02
나이지리아에서 국제마약조직 총책 K·제프가 검거되는 모습. 국가정보원 제공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성에게 환심을 사는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등 수법으로 한국인을 속여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한 나이지리아 마약조직 총책이 국가정보원과 현지 당국 공조로 검거됐다. 마약 조직원들은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유엔 직원 등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선물 등을 대신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는 식으로 속여 마약이 숨겨진 물품을 배송케 했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TCIC)는 20일 국제 마약조직 총책 K·제프를 나이지리아 마약법집행청과 공조해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K·제프는 2007년 한국에서 마약 유통 범죄를 주도한 혐의로 검거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추방됐다. 이후 나이지리아에서 조직을 만들어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 아프리카, 북미, 유럽 등에 대규모로 마약을 밀수출했다.

K·제프가 이끄는 조직은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이나 국제기구 직원, 변호사 등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신뢰를 형성한 뒤 항공권이나 숙소, 생활비를 주겠다며 출국하도록 유인했고, 마약이 숨겨진 물품 운반을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연인처럼 행동해 피해자 마음을 얻어 돈을 가로채거나 특정 행동을 강요하는 로맨스 스캠 수법도 활용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5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SNS ‘왓츠앱’을 통해 친분을 쌓은 조직원으로부터 거액을 벌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브라질로 출국해 제모용 왁스를 받은 뒤 이를 캄보디아로 전달하려 했지만 왁스 속에 담긴 코카인이 적발돼 붙잡혔다. 마약이 숨겨진 초콜릿을 다른 국가로 운반하다 붙잡힌 피해자들도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운반책 피해자는 10여명에 이른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국정원은 2020년부터 약 5년에 걸쳐 K·제프 일당을 추적한 끝에 현재까지 필로폰, 대마 등 45.6㎏(시가 약 972억원)의 마약을 압수하고 총책을 비롯해 조직원 37명을 검거했다. 국정원은 “자신도 모르게 마약 운반책이 되지 않도록 온라인상에서 접촉한 사람의 요청이나 해외에서 물품 운반 요청을 받으면 거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준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