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2054년 니플하임 행성, 빙하 틈새 위로 떨어져 곧 죽을 운명에 처한 미키(로버트 패틴슨·사진)에게 장비를 회수하러 온 티모(스티븐 연)가 묻는다. 지구에서 친구 관계였던 두 사람은 함께 마카롱 가게를 열었다가 사채를 갚지 못해 우주로 도망쳐 왔다.
조종사 자격증이 있는 티모는 그럴듯한 직업을 얻었지만, 변변한 자격증도 없이 빚만 떠안은 자영업자 미키는 소모품인 ‘익스펜더블’로 살아간다. 익스펜더블은 위험한 실험에 투입되는데 죽으면 ‘휴먼 프린터’를 통해 복제돼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17번째 미키까지 왔다. 그런데 미키 17이 아직 죽지 않은 상태에서 18번째 미키가 잘못 프린트된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자본주의와 현실 정치에 대한 지독한 우화다. 실험을 위해 인간을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인간성을 밟고 올라선 자본주의를 풍자한다.
벼랑 끝에 몰린 청년 자영업자 미키와의 대척점에 행성의 독재자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이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무시하고 경멸하며, 성차별적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인물이다. 미키는 안쓰러움과 답답함을, 케네스는 분노를, 미키를 죽이고 복제하면서도 아무 감정 없는 직원들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우주에서 미키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나샤(나오미 애키)는 비정한 세상에서도 사랑이 인간을 바꾸고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패하고 비인간적인 독재자를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지도자의 모습도 투사된다.
기존에 알던 SF의 장르적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낯설거나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배경이 어디든 봉준호의 이야기는 늘 땅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우주에 있지만 ‘미키 17’의 캐릭터와 설정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크리퍼’라고 불리는 우주 생명체인데, 그마저도 보다보면 귀여운 인상을 풍긴다. 반전이라면 이 크리퍼들이 오히려 휴머니즘을 보여주고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러닝타임 137분, 15세 이상 관람가.
임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