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역자에 대한 한국교회 유리천장이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도사를 포함한 우리나라 목회자 10명 중 8명은 “한국교회 내 여성차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 목회자가 기성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받기는 매우 어렵다”는 의견엔 목회자 10명 중 9명이 동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목회데이터연구소(목데연·대표 지용근)가 지난해 8월 20일부터 나흘간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남녀 목회자 5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20일 공개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교회 안에서 차별받고 있는 여성 사역자들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설문에서는 “한국교회 내 여성차별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79.8%에 달했다. 성별에 따라 응답 비율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여성차별에 대한 질문에 남성 목회자는 10명 중 7명(75.1%)이, 여성 사역자는 절대다수(94.2%)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이 차별받는 영역은 교회 모든 사역에 해당할 정도로 광범위했다. 응답자들은 “여성 목회자가 기성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 받기는 매우 어렵다”(89.6%) “여성 부교역자는 남성 부교역자에 비해 대예배에서 설교할 기회가 적다”(67.0%) “남성 담임목사는 여성 부목사를 선호하지 않는다”(57.0%)고 답했다.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으면 전도사 때보다 사역의 기회가 줄어든다”(52.1%)는 응답도 절반을 넘어섰다(그래픽 참조).
교회 내 남녀 불평등 개선책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응답자들이 ‘남성 목사들의 의식 전환’(38.0%)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여성 목사 안수 허용’(18.3%) ‘남성 성도들의 의식 전환’(11.8%) ‘남녀평등 교육’(10.2%)이 한국교회 성 평등을 위한 과제로 꼽혔다.
김혜숙 전 전국여교역자협의회 사무총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교회 내 남녀평등의 가치가 공유되고 있으나 여성 교역자를 보조적인 사역자로 보는 인식은 여전히 깨지지 않는 규칙처럼 남아 있다”며 “여성에겐 교육부서나 심방을 맡길 뿐 목회를 이끌어갈 영적 지도자는 남성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회가 나서 ‘여성 사역자 할당제 도입’과 ‘신학대 양성평등 수업 필수과목 지정’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성 사역자들이 사역을 잘 해내는 선례와 경험이 축적돼야 교인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했던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도 제도는 물론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여성 총대(총회 대의원) 할당제 등을 도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여성 사역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작 여성이 사역 현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성별에 따라 사역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 고정관념을 깨는 등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여성안수의 시작은 1955년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열었다. 이어 한국기독교장로회(1977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1996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1997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2005년) 예장백석(2012년) 기독교한국침례회(2013년) 등이 차례대로 여성 안수를 결의한 뒤 여성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다. 반면 예장합동·고신·합신 등 보수적 성향의 교단들은 여성 안수 제도가 없다.
목데연은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가나의집에서 ‘한국교회 여교역자의 현실’을 주제로 목회데이터포럼을 열고 교계에 이번 조사 결과를 공개한다. 정재영 교수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예장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인 김은정 목사가 보고서에 담긴 함의를 평가한다. 이번 목회데이터포럼은 유튜브로도 생중계된다.
이현성 박윤서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