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트루먼의 베스트셀러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이상한 신세계’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기이한 문화적 순간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이 여성 스포츠에서 우월한 성적을 거두고 스미소니언이 미성년자가 참여하는 드래그 쇼를 주최하게 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앎의 나무’를 본다. 뱀은 인류의 첫 부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창 3:5)고 유혹한다. ‘안다(know)’라는 단어는 창세기의 이 의미를 흐릿하게 만든다. ‘know’라는 말이 창세기 3장의 고대 히브리어에 더 가까운 의미를 담아내는 실제는 이렇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 그중에는 데이브도 있었다. 데이브는 린킨파크라는 밴드 창단 멤버였다. 데이브는 7번이나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두 번째 앨범 ‘Meteora’를 동료들과 함께 작업했다. 우리는 50편이 넘는 곡의 트랙을 듣곤 했다. 그때 내게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이 곡에 사용된 효과, 그리고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인가.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그의 곡에 대해 묻지 않았다. 데이브는 그 노래들을 ‘알고 있었다.’ 데이브가 그 노래들을 알았던 것은 그가 악보를 하나하나 뜯어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노래들을 알았던 것은 그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노래를 만든 사람의 앎이 있었다. 데이브는 고대 유대인이라면 ‘바카르’라고 불렀을 그런 앎을 가지고 있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제안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만든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앎은 하나님이 그분의 우주에 대해 알고 계시는 그런 종류의 앎이다. 하나님이 어떤 것을 아신다는 것은 그분이 직접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선악을 아시는 하나님은 곧 선악을 창조하시고 구성하시고 결정하시고 정의하시는 하나님의 히브리어 축약형이다.
선과 악이라는 말은 어떤가. 이 어구는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키려는 의도로 양극단의 것을 일컫는 고대 유대인의 말하기 방식이다. 선과 악은 ‘모든 것’의 히브리어 축약형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셨다.”(사 44:24) 하나님은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그 위에 측량줄을 띄우셨다. 하나님은 하늘을 다스리는 질서를 아시고 그런 법칙을 땅에 적용하셨다.(욥 38:33) 하나님은 어떤 한계에도 속박되지 않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가 ‘선악을 안다’는 이 작은 히브리어 어구 안에 압축돼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을 지워버리는 것은 인류의 첫 번째 유혹과 그 이후의 모든 유혹의 본질이다. 영리한 뱀은 하나님이 그분의 위태로운 자아를 보호하려고 피조물을 우둔하고 고분고분하게 만들었다고 속삭인다. ‘진정한 능력을 원한다면 하나님께 복종하지 말고 스스로 하나님이 돼야 한다.’ 사탄은 하와를 꾀려고 속삭인다. ‘이 열매를 먹어라. 네게 신적 능력을 안겨줄 이 알약을 삼켜라. 하늘의 패권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라!’
이것은 물론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지닌 첫 사람들에게 놀라운 창조력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우주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더하고 창조주를 본받는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창 1:26~28)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과 닮게 만드셨다. 그러나 당신과 동등하게 만들지는 않으셨다. 당신을 대신하라고 하셨지 대체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세계는 순간순간 우리에게 이 구별을 거부하라고 손짓한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반역에 길에 들어서고 결국 슬픔과 파멸의 늪에 빠져들고 만다.
우리 시대 인기 있는 슬로건 배후에는 옛 뱀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여전하다. ‘너 자신을 믿어라’ ‘네 마음을 따르라’ ‘답은 네 안에 있다.’ 사탄의 오리지널 화법처럼 이 슬로건도 무해한 소리로 들리고, 심지어 도덕적으로 선한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오래된 거짓말에 참신하거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 훨씬 더 진실한 삶이요 또한 우리를 만족스럽게 하는 삶이다. 우리는 주권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 구별 안에, 우리가 찾는 진정한 자유가 있다.
◇ 디어스 윌리엄스는 미국 바이올라대에서 부교수(조직신학)로 재직하고 있다. 트리니티법률전문대학원에서 법학을 가르쳤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라브리공동체에서 세계관을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