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를 쓰십니까?/아니요 벼락을 씁니다/벼락 맞을 짓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벼락 맞을 짓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벼락에 고하는 글을 씁니다// 벼락에 고하는 글/화평한 서정시를 쓰고 싶습니다/위선과 비열, 몰염치와 야비, 교활하기까지 한/그 가면들을 순간의 빛 속에 가두고/때리는// 서정시를 쓰십니까?/아니요 ‘서정시’를 씁니다/벼락같은”(‘서정시를 쓰십니까’ 전문)
장석남 시인의 새 시집 ‘내가 사랑한 거짓말’(창비, 2025)을 읽으며 지난여름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에 입주했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동료 작가들과 언덕배기 복숭아밭으로 저녁 산책을 나선 참이었다. 우산을 들고 나서긴 했는데, 먹구름이 몰려드는 기세를 보니 한바탕 소낙비라도 내릴 판이었다. 급기야 복숭아밭에 다다랐을 때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콧속에 흙내가 한꺼번에 들이치더니, 뿌옇게 시야를 가리며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다.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투계가 뒤꿈치를 쪼아대며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쪽에서 동쪽까지 하늘이 번쩍했다. 잿빛 하늘에 금맥이 잔가지를 뻗고 1초 만에 사라졌다. 컴컴한 세상이 일순 밝아졌다. 그때마다 마법처럼 우리들의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 다시 ‘빡!’ 하고 쪼개지듯 번개가 쳤다. 귀가 먹먹했다. 벼락을 맞을까 봐 겁이 났지만, 폭우 속을 철부지처럼 내달리다 보니 신이 났다. 빛은 먹구름 뒤에 숨고, 난폭한 밤의 왕이 번쩍이는 단도를 쥐고 하늘을 북 북 찢고 있었다.
때때로 이 암담한 시대에 서정시를 쓰는 일이 캄캄한 폭우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시인은 ‘벼락에 고하는 글, 화평한 서정시를 쓰고 싶다’라고 역설적인 다짐을 하는가. 나는 다만 젖은 머리카락 말리며 우레와 같이 지나간 여름을 꺼내본다. 다음날 담벼락 아래 무수히 떨어진 풋대추를 보듯이.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