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국내 물가 부채질… 미·중국산 습격 식량자급률 악화도

입력 2025-02-20 02:4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 서막이 한국 식탁에까지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당장은 잠잠해 보이지만 언제든 높은 파고로 식탁을 흔들 수 있는 형국이다. 관세 부과가 원재룟값 상승으로 연결돼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비자 물가부담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미국산 농수축산물 수입 압박까지 더해지면 농민들 또한 위기에 내몰린다. K푸드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포함해 수출로 날개 단 식품기업은 직격탄을 받게 된다. 총체적 난국이 언제든 펼쳐질 수 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한국인의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이유는 ‘대미 수출 호실적’ 때문이다.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對)미국 농식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21.2% 증가한 15억9290만 달러(약 2조3229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우리나라는 미국 무역적자액 8위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무역수지 1위 흑자국인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2위)와 캐나다(9위)에는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한국도 트럼프 행정부의 레이더 안에 포착돼 관세 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성장 가도를 달리는 라면·과자·음료·쌀 등 K푸드 대미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한국의 식탁 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맥락은 이렇게 설명된다. 한국 수입 식품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식품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다. 기업은 이를 가격 인상으로 충당하려 할 수 있다. 혹은 수출 실적이 전년 대비 떨어지게 될 것을 우려해 내수 상품에 대한 가격 인상까지 고려할 수 있다. 한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식으로 전개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12일부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예외 없이 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뜻밖의 악재로 떠올랐다. 알루미늄 포장재를 사용하는 캔 음료의 경우 제조원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초래한 원자재 상승분에 대해 기업에서는 제품 가격 인상으로 메울 소지가 다분해진다. 결국 국내 소비자 가격 상승이 다음 수순이 된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관세 대상이 알루미늄 원물인지, 가공물인지 등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요구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10대 농정 이슈’ 보고서에서 무역수지 개선을 목표로 미국의 수입 확대 압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산 수입 확대는 농어민들에게 직격탄이 된다. 우리나라 로컬푸드는 수입산과 맞붙었을 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크게 밀린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으키는 미·중 무역 갈등 또한 한국인의 식탁을 바꿔놓을 수 있다. 미·중 간 농식품 교역이 감소하면 판로를 잃은 중국산 농축수산식품이 한국으로 밀려들 여지가 충분하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 시장은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인식된다. 과잉 생산된 중국산이 높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침투하면 한국산은 설 자리를 더 잃게 된다. 국산 식품은 프리미엄 상품으로 값비싸게 판매되거나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악화된다. 식품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미국에서뿐 아니라 중국에서까지 들이닥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빈곤한 수준이다. 1970년대 80%대였던 식량자급률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2023년 50% 아래로 떨어졌다. 최근 공개된 ‘2024 농림축산식품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양곡연도) 식량 자급률은 직전 연도(49.4%)보다 0.4% 포인트 낮은 49.0%로 집계됐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도 2023년 22.2%로 전년(22.3%)보다 0.1% 포인트 감소했다. 쌀 자급률은 100%를 넘지만 밀과 옥수수 등은 1%도 되지 않는다. 식량안보지수(FSI)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값싼 미국·중국산 농산물이 밀려오면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더 낮아지는 게 자명하다. 당장 소비자에게는 가격 부담이 줄어들 수 있으나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 기후 위기 영향으로 국내 농수산식품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가운데 수입산 확대는 향후 국산 농산물 공급 감소를 부추길 수 있다. 그 결과 식량 자급률은 낮아지고, 장기적으로는 수입국의 가격 정책에 휘둘릴 우려가 생긴다. 악순환이 예상된다.

안팎의 상황이 녹록잖은데 정부는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의 식량 자급률 목표치가 후퇴했다. 최근 농식품부는 ‘2025~2029 제1차 공익직불제 기본계획안’에서 2029년까지 식량 자급률 55.5%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2022년에는 55.5%의 목표치를 2027년까지 이루겠다고 했었다.

정부 한 관계자는 “K푸드의 수출 확대는 한류와 같은 문화적 요인 덕분이지만,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과 관세 부담이 국내 경제에 미칠 불확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여러 시나리오를 고려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