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 정국에서 보수도 진보도 모두 결집했다”며 “만약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승부를 결정짓는 건 중도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의 보수 결집 현상이나 국민의힘 지지도가 올라가는 여론조사 수치만 보고 ‘어,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다르네’ 하고 안도하는 것은 국민의힘에는 독약”이라고 강조했다.
유 전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근 ‘우클릭’ 행보를 ‘중원’을 노린 전략적 움직임으로 평가하면서 “이 대표가 자기 호적을 파면서까지 중도보수 영토로 침범해 들어오는데 여당은 뭘 하고 있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더 오른쪽으로 밀려나서는 승산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헌재가 공정성에 금이 갈 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렇게 가면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굉장히 심각한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일보는 1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유 전 의원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유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12·3 비상계엄과 탄핵심판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나.
“저는 비상계엄 선포 당시 이미 ‘실패한 내란’으로 규정했었다. 일관되게 대통령 탄핵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민주당이 연이은 탄핵과 특검 추진, 예산 삭감, 입법독재 등 잘못한 것은 맞지만 비상계엄이 이런 잘못에 대응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못된 사람이 계속 약 올린다고 몽둥이로 폭력을 가하면 그때부터는 때린 사람의 잘못이 되는 것이다.
다만 헌재가 최종적인 헌법 판단 기관으로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소추 정족수 문제를 놔두고 있고, 내란죄를 윤 대통령 탄핵 사유에서 철회하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사안을 두고 우왕좌왕하면서 신뢰에 금이 갔다. 이제 탄핵 기각이든 인용이든 헌재가 그 판단 이유와 근거, 논리를 충분히 결정문에 담아서 국민이 ‘이 정도면 받아들인다’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탄핵 정국에서 보수층이 집결하는 양상인데.
“8년 전과 다른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정부 5년간의 적폐청산을 거치면서 ‘이재명 포비아’가 보수 지지층에 각인이 됐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몇 배는 잔인하게 적폐청산에 나설 것이고, 경제와 안보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보수층이 결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도층이다. 지난 총선도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을 못 잡아서 참패하지 않았나. 여전히 중도층에서는 탄핵찬성·정권교체 여론이 높은데, 이것은 국민의힘에 굉장히 위험한 신호다.”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보수’ 발언을 했다.
“민주당 대표의 입에서 중도도 아니고, 중도보수라는 말이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저 역시 이 대표의 ‘우클릭’이 ‘신종 사기’라는 입장이지만 중도층 여론이 국민의힘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만만히 볼 일은 아니다. 국민의힘도 중원 싸움에 나서야 하는데, 지금 당의 주류라는 인사들은 전광훈 목사 집회에 나가고, 극우 유튜버들하고 부정선거 얘기나 하고 있다. 진보에서 보수까지 0에서 10의 스펙트럼이 있다면 지금 국민의힘은 9~10에서 바글바글 다 몰려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자꾸 우경화되면 역설적으로 우리 당원이나 지지층이 가장 싫어하는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를 도와주는 일밖에 안 된다.”
-다른 여권 주자들과 비교한 본인의 강점은.
“중도에서의 확장력과 파괴력이다. 그리고 이 대표와 중원에서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결국 보수 유권자들에게 ‘이재명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최우선 이슈가 될 것이다. 지금 저와 가장 대비가 되는 게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인데, 김 장관이 나가면 중도 싸움에서 승산이 있나.”
-당내 ‘배신자 프레임’이 만만치 않다.
“지난 10년간 그런 프레임과 시각으로 저를 보는 것에 대해 저도 왜 잘못이 없겠나. 저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정치를 하다가 생긴 생각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박 전 대통령 회고록을 다 읽어봤는데, 기억이 다른 부분도 있고 오해를 풀어야 하는 부분도 있더라. 언젠가는 서로 풀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구속되고 고생하신 것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 회한 같은 게 있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생각하나.
“하나만 꼽으라면 경제다. 인구 위기도 해소하려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그건 성장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통합이다. 문재인정부를 거치며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 심화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에 대해 대화하고 협상하고 그러면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다.”
-개헌에 대한 입장은.
“5년 단임제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바꿔야 한다. 대통령 권한이 국회의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동시에 제왕적 국회를 어떻게 견제할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대표가 개헌에 전혀 관심이 없다. 조기 대선 시 개헌 투표까지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소선거구제라도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서 한국 정치를 뜯어고쳐야 한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