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에 있는 동숭교회(이광재 목사)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줄 알았다. 건축사사무소 이로재 대표인 승 건축가는 서울시 총괄건축가,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역임한 유명한 건축가로 이 교회 장로다. 그런데 알아보니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했다. 민 건축가는 승 건축가만큼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현대 건축의 1세대이자 대가로 불리는 김수근 건축가 밑에서 승 건축가와 함께 일을 배웠다. 건축사사무소 기오헌을 설립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를 지냈다. 지난달 23일 동숭교회 카페 ‘에쯔’에서 만난 그는 “승효상 본인이 실력 있는 건축가라 해도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설계하는 것은 부담이 됐던지 내게 부탁을 하더라”며 웃었다.
서울 낙산과 연계한 열린 교회
동숭교회는 현대적 감각의 열린 교회다. 지역 주민과 공간을 공유하고 교회 주변과 상호 작용한다. 민 건축가의 건축 철학에 따르면 건축물과 땅은 인근 자연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 교회 역시 그의 이런 철학이 반영됐다.
교회는 낙산 아래에 있다. 낙산은 서울 산경(山景)을 구성하는 중요한 산이다. 우백호인 인왕산에 대비되는 좌청룡에 해당한다. 그는 이 낙산과 교회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열린 마당이다. 구 교회 건물과 새 교회 건물 사이에 있는 이 마당은 낙산을 품고 있다. 이 마당을 거쳐 예배당으로 향하면 멀리 낙산이 보인다. 양쪽 건물 벽과 마당, 그리고 계단 위 캐노피(덮개)는 낙산 풍경화를 담은 액자다.
이 마당은 또 성도가 예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는 여정의 공간이기도 하다. 세상 속에 있던 성도들이 경건한 예배실로 곧바로 들어가지 않게 완충 역할을 한다고 민 건축가는 설명했다. 이곳은 또 친교의 장소요, 문화 선교의 장으로 설계됐다. 각종 공연이 실제 이곳에서 진행된다.
1000석을 고집한 이유
대예배실은 영적 공간으로 깊이 고민한 결과다. 의도적으로 규모를 1000석으로 제한하고 인테리어를 절제했다. 민 건축가는 예배실의 공간적 역할은 모든 예배자가 하나 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2003년 설계 당시 담임이었던 서정오 목사의 생각도 같았다. 그러려면 예배 공간이 적정해야 했고 그 한계가 1000석이었다. 민 건축가는 “성도들 마음이 하나 되려면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000석이 넘어가면 가장 먼 회중석에서 목회자, 성가대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예배실은 중층이다. 민 건축가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 계단을 실내에만 만들었다. 2층에 오르내리려면 반드시 1층을 거치도록 했다.
예배실 분위기는 간소했다. 벽면, 성구 모두 한가지 색, 나무 톤으로 통일했다. 단상의 벽면과 천정까지 옅은 나무색으로 마무리했다. 단상 정면엔 오른쪽 나무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 흔한 LED스크린도 없다. 예배 순서자를 위한 의자는 미니멀리즘 그 자체였다. 긴 회중석을 벽에 붙여 놓은 것 같은데 장식도 없고 구조도 단순했다. 회중석과 성가대석 역시 장식 요소와 기능을 배제했다.
이런 절제는 결국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시선을 두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다. 민 건축가는 “배경이 복잡하면 그게 먼저 보인다”며 “우리가 예배를 위한 공동체라면 건물은 그 공동체를 수용하는 역할로 충분하다”고 했다.
아름다운 수 공간, 빛의 감동
지하 1층 소예배실도 눈길을 끌었다. 명칭은 소예배실이지만 ‘또 다른 본당’이란 느낌으로 설계했다. 예배 인원이 적은 새벽기도회나 저녁 예배를 위한 별도의 ‘조그만 교회당’을 콘셉트로 잡았다. 분위기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를 닮았다. 예배당 바깥에 수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얇고 긴 십자가를 세웠다. 수 공간은 담쟁이덩굴이 덮인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수면은 거울처럼 빛을 반사한다. 빛은 바람이 만든 물결에 따라 부서지고 이것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1층 카페도 건축물에서 비중 있는 공간이다. 서정오 목사는 예배 이외의 교회 활동이 이곳에서 활발히 펼쳐지길 바랐고 실제 다양한 계층을 위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상황에 따라 공간을 가변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투자도 많이 했다고 한다. 새 건물은 2005년 건축됐다. 당시만 해도 교회 카페가 지금처럼 많진 않았고 그래도 카페를 만든 것은 대학로라는 문화 공간, 이에 따른 문화 선교를 크게 염두에 둔 것이었다.
동숭교회는 민 건축가가 설계한 유일한 교회다. 교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축주여서 이들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또 부친이 목회자여서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 강서교회 민영완 원로목사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25대 총회장을 지냈다. ‘목사 아들이어서 교회 설계를 잘할 줄 알았더니’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승 건축가가 주장해서 동숭교회 설계를 맡게 되니 ‘승 건축가가 했으면 더 나았을 텐데’ 하는 부담까지 더해 고민이 많았다.
민 건축가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교회는 건축가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서 목사와 교회 공간에 대한 생각도 일치했다. 성도들은 결과에 만족했다. 민 건축가는 지금도 본래의 설계 의도대로 사용하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교회를 둘러보고 잠시 만난 이광재 동숭교회 목사는 “대학로에 있는 동숭교회의 지역적 특성이 건축에 잘 반영됐다”며 “이를 토대로 청년들의 문화를 어떻게 더 담아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전병선 선임기자, 민현식 제공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