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주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동북아 안보지형도 전환기를 맞게 됐다. 특히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우선하는 협상에 나서면서 북한과의 협력을 규탄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온 한국이 난처한 상황에 몰렸다는 평가다. 종전 협상 결과는 북·러 및 북·미 관계 변화와 맞물려 있어 한반도 정세도 급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19일 “종전을 위한 노력에 높은 관심을 갖고 협상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평화와 재건을 위해 우방국과 공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또 “(정부는) 러시아와도 최근까지 외교 채널을 통해 긴밀히 소통 중”이라며 “모스크바와 서울 채널을 통해 필요한 대로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는 미국 주도의 종전 협상에 대한 국제사회 반발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전임 정부가 트럼프식 중동평화구상을 지지하자 국제사회로부터 큰 지탄을 받은 바 있다”며 “지금은 특히나 한국의 국제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때라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외교가에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어서 우리 정부가 미국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선택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협상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끝난다면 대북 관계는 물론 세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 협상의 결과는 대북 정책에도 직접적 영향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북한의 지원이 절실하지 않게 된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 회복을 택해 북한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그러나 현승수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러시아는 동북아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미국과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국에도 유화 정책을 펼 것이라고 방심해선 안 된다”며 “한국을 압박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더 끌어올리면서 군사적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역시 종전 협상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교수는 “핵을 가진 러시아가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탈할 목적의 전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꼴”이라며 “북한이 더 대담해질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상외교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외교부 등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미국 등과의 소통 창구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단순히 미국 입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북·러 군사협력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우리 입장을 피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가 한국행을 요청할 시 전원 수용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런 입장을 우크라이나 측에도 이미 전달했으며, 계속 협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