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대주주 국적 따라 수입 다변화 온도 차

입력 2025-02-20 00:15

요동치는 국제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정유업계가 대주주 국적에 따라 원유 수입처 다변화에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 회사를 대주주로 둔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는 미국의 관세 타깃이 된 캐나다산 원유 수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반면 미국 기업 지분율이 높은 GS칼텍스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기업의 자회사 에쓰오일은 대주주와의 관계를 의식해 수입 다변화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SK에너지는 SK이노베이션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지분 74%는 지주사 HD현대가 들고 있다. 반면 에쓰오일의 대주주는 지분 63%를 보유한 사우디 국적의 아람코이고, GS칼텍스는 GS에너지와 미 쉐브론이 50 대 50으로 지분을 나눠 갖는 구조다.

토종 기업인 SK에너지와 아람코 지분율이 17%에 그치는 HD현대오일뱅크는 더 싼 원유를 들여오는 데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산 원유를 겨냥한 ‘관세 폭탄’을 예고하자, SK에너지 측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트럼프의 관세 부과로 캐나다산 원유 일부가 아시아로 넘어오면 싼 원유를 구매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며 “상황이 닿는 대로 캐나다산 원유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HD현대오일뱅크도 “캐나다산 원유가 글로벌 시장에 풀리면 우리와 같은 중질유(무거운 원유)를 원하는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에쓰오일과 GS칼텍스에선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19일 “대부분 원유를 사우디의 아람코에서 들여오고 있다”며 “안정적인 파이프라인을 이미 중동에 꽂아둔 셈이라 수급선 다변화 수요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GS칼텍스는 “대외 변동성과 경제성을 검토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 대형 에너지 기업의 한국 정유사 지분 보유에는 안정적인 판로 확보라는 목적이 깔려 있다”며 “한국 정유사가 원유 수급처에 변화를 줄 때 이들 외국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간 한국 정유사들은 러시아 이란에서 ‘어둠의 경로’로 싼 원유를 확보한 중국과 인도 정유사들에 밀리며 수익성 악화를 겪었다. 지정학적 변화가 일으킬 지역별 원유 가격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러시아산 원유가 시장에 풀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제재 고삐를 더 강하게 죄어 이란산 원유의 유통을 막으면 한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은 어떻게든 더 저렴한 원유를 도입하려고 하지만 각 사 지분 구조에 따라 그 방향성이나 적극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