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아프간 2.0

입력 2025-02-20 00:40

지금 우크라이나 상황이 2021년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유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배후로 무장세력 알카에다를 지목한 뒤 그해 말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알카에다를 비호한다는 이유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뒤이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도 참전했다. 곧 탈레반 정권이 축출됐고 온건한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다. 하지만 탈레반의 저항으로 전쟁이 20년간 이어지고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들어가자 미군과 나토군은 결국 철군을 결정했다.

아프간 정부가 힘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미국은 오히려 아프간 정부는 뺀 채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했고 ‘미국을 적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2021년 7월 아프간에서 완전철수했다. 아프간 정권의 운명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철수 한 달 만에 정권이 무너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 독일 ARD와 인터뷰에서 미국과 러시아 간 평화협상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아프간 2.0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무도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국을 뺀 채 협상이 시작됐고,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는 물론, 평화유지군 주둔 시 미군은 불참하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데 대해 우려를 표한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이 들어서길 바라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선이 안 치러졌고 젤렌스키 지지율은 4%에 불과하다”며 정권 교체를 시사하는 발언도 한 뒤였다.

미군 철수로 힘의 공백이 생기자 아프간 정권이 무너졌듯 러시아 입맛에 따라 평화협상이 이뤄지고 이후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은 채 종전이 이뤄지면 진짜 아프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자신들과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약소국 국민으로서의 설움이 북받쳐 올랐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진짜 생기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더 목소리를 내야겠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