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로 만나는 디지털역사관
고무신을 신고 흰 저고리와 짙은 치마에 앞치마를 두른 여성 성도들이 야외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벽돌을 쌓아 바람을 막은 아궁이 위에는 큰 가마솥이 놓였고 여성들은 낡은 놋그릇을 정리하고 있다. 주변의 군용 드럼통은 6·25전쟁 직후 교회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회에 온 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려 상을 차리는 이들의 손길에서 정성과 공동체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1950년대 촬영된 이 사진은 지난해 9월 충현교회가 오픈한 ‘디지털 아카이브(Digital Archive)’에 소장된 자료다. 기록을 보관하는 공간인 아카이브(Archive)를 디지털화한 것이 디지털 아카이브다. 데이터베이스(DB)와 유사하지만 문서 사진 영상 음성 등 다양한 기록물 자료를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 보존 검색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14일 충현교회에서 만난 박노익(58) 장로는 “교회는 70년간 자료를 수장고에 보관했지만 당회록과 핵심 자료 외에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했다”며 “방대한 자료 중 일부는 버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2023년 ‘교회 70년사’ 책을 기획하면서 영구 보존이 가능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70년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에 성도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됐다. 할머니 세대부터 간직해 온 귀한 사진 한 장, 노랗게 바랜 오래된 주보, 골동품 같은 기념품 등 성도들이 가져온 자료 하나하나가 곧 역사였기 때문이다.
박 장로는 “가장 화제가 된 자료는 은퇴한 장로님이 옛 성전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찍은 비디오 영상이었다”며 “성도들과 함께 영상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교회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기록’ ‘컬렉션’ ‘콘텐츠’ 유형으로 분류했다. 부서 및 위원회 자료를 주제·활동·연대별로 정리한 문서(기록), 예배 훈련 전도 선교 등 특정 주제를 앨범 형태로 구성한 자료(컬렉션),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기획·다큐멘터리(콘텐츠) 등이다. 선별된 기록물은 목록화 후 스캔해 디지털 아카이브에 탑재됐다. 박 장로는 “오래된 사진 속에 교회의 역사는 남아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사역 중 촬영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시대를 기억하는 어른들이 떠나면서 기록 보존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으로 교회 기록을 언제든 쉽게 조회하고 활용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보존과 관리는 여전히 큰 과제다. 매주 자료 정리와 메타데이터를 추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기록 관리를 전담할 인력도 필수적이다. 박 장로는 “기록 보존을 위해 각 부서 담당자 교육과 상설 조직 구성을 통해 교회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계승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NCCK 100년 역사, 기록 정리만 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6월 디지털 아카이브를 오픈했다. NCCK의 100년 역사와 한국 기독교의 사회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약 6년의 시간이 걸렸다. NCCK 100주년 기념사업특별위원회 김신약(37) 목사는 “6·25전쟁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많은 자료가 소실되거나 압수됐다. 2019년 연구원으로 합류했을 때도 이미 유실된 자료가 많아 초기 3년은 흩어진 기록을 수집하는 데 집중했다”고 전했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너무 오래돼 문서 스캔 기계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자료였다. 그는 “이 자료들은 직접 손으로 한 장씩 스캔해야 해 매우 조심스러웠다”며 “작은 실수로도 훼손될 수 있어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다뤄야 했다”고 회상했다.
김 목사는 이처럼 힘든 작업을 감수하면서도 기독교 유산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오늘날의 우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라며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발맞춰 끊임없이 개혁하면서, 동시에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록 보존 작업은 개교회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안적 SNS ‘온라인 아카이브’
다만 디지털 아카이브는 높은 구축 비용과 지속적인 관리 부담 때문에 대형교회나 연합기관 등이 아닌 각 교회가 개별적으로 도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박 장로는 “기록 보존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정리와 지속적인 관리다. 나스(NAS)와 같은 저장 장치를 활용해 안전하게 자료를 보관하고 홈페이지에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온라인 아카이브’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SNS를 통한 기록 보존은 별도 아카이브 구축이 필요 없고, 접근성과 활용성이 뛰어나다. 예배, 행사, 선교 활동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다.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성도들이 교회의 기록에 직접 참여하며 공동체의 유대감도 형성할 수 있다.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SNS를 활용해 교회의 기록을 쌓아가는 그저교회 전인철 목사는 “교회의 역사와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우리가 걸어온 서사가 곧 교회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SNS는 아카이브와 달리 검색 기능은 부족하지만 접근성이 뛰어나다. 우리 공동체만의 아카이브로 만족하며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온라인 아카이브도 의미있는 자료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기록하고 관리해야 한다. 전 목사는 “신앙인에게 기독교 역사를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사명”이라며 “방식은 각 조건에 따라 다르더라도,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의 소중한 기억을 우리만의 언어로 기록하며 지켜가겠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충현디지털역사관·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아카이브 제공, 그래픽=강소연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