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노역 덜 세종의 수레 보급
산악 지형 탓한 반대에 막혀
350년 뒤 실학자 박지원 제안
'안돼니즘'에 결국 흐지부지
건강·환경 모두 지킬 자전거
시도조차 않고 막을 필요 있나
산악 지형 탓한 반대에 막혀
350년 뒤 실학자 박지원 제안
'안돼니즘'에 결국 흐지부지
건강·환경 모두 지킬 자전거
시도조차 않고 막을 필요 있나
급작스러운 계엄 이후 많은 사람이 정치가 사회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불확실하며, 경제도 구조적 불황에 빠졌다고 인식하게 됐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소통이 어려워지고 사회적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음은 무겁고, 신나는 일도 드물다. 입춘도 지났고 곧 따뜻한 계절이 오니 자전거 타기를 권하고 싶다. 자전거는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고급 자전거는 비싸지만, 중저가 자전거도 충분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자전거 보급으로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웬만한 언덕도 쉽게 넘을 수 있게 됐다.
자전거는 출퇴근, 동네 간 이동, 아이들 통학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 교통 수요를 줄이고 대기오염 및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기여한다. 차량 이용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15%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자전거 이용은 건강을 지키면서 환경 보호와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가장 경제적인 활동 중 하나다. 에너지를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 이용이 에너지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일부 연구에 따르면 자전거 이용 증가로 건강한 사람이 많아지면 의료 재정 적자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자전거 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정책 조언과 시민 활동에 참여하다 보면 다양한 반응을 접한다. “우리나라는 언덕이 많아 자전거 타기에 적합하지 않다” “자전거는 위험하다. 다친 사람도 많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의견, 일종의 ‘안돼니즘’을 마주할 때도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이런 반응을 들으면 한글 창제로 유명한 세종대왕과 수레에 대한 일화가 떠오른다. 모든 것을 안 된다고 하면 바뀌는 법은 없다.
세종대왕 시대에는 자전거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자전거와 세종대왕을 연결하는 것이 다소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전거의 기원은 19세기 초 독일의 페달 없는 나무 자전거인 드라이지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세종대왕은 15세기 초 즉위했고, 수레 이용을 장려한 조선시대의 임금이다. 그는 민초들의 생활에 깊이 관심을 가졌으며, 수레가 노동 부담을 줄이고 물건 운반을 쉽게 만들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고된 노역도 덜어줄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따라 수레의 보급과 활용을 적극 장려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산지와 언덕이 많아 수레 이용에 적합하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수레가 다닐 길을 닦기보다는 길이 부족해 활용이 어렵다는 ‘안돼니즘’적 사고였다. 이는 오늘날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전용 도로나 주차장 같은 인프라 정비 및 안전교육 강화 노력 없이 자전거 이용의 위험성과 어려움만 강조하는 태도와 유사하다.
세종대왕 이후 수레 이용 장려 정책은 중단됐고, 350년이 지나 조선왕조가 쇠락해 가던 시기에 개혁적 실학자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다시 수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접하고 조선의 상공업 발전을 위해 수레 사용을 적극 제안했지만 결국 ‘안돼니즘’을 극복하지 못해 기대만큼 확산되지 않았다.
반면 서구에서는 수레 기술이 자동차 확산과 함께 기계공학 발전을 이루고, 도로 및 터널 개척을 통한 토목공학과 결합하며 기술문명 발전의 중심이 됐다. 우리나라는 변화를 수용할 기회를 놓쳤고, 이는 조선왕조의 쇠퇴와 멸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남는다. 탄소중립이라는 명확한 미래 방향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안돼니즘’을 내세우며 변화하지 못한다면 조선왕조와 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
지난해 열린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9)에서는 자전거와 보행을 포함한 활동적 이동(active travel)이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NDC) 수립 시 참고할 가이드로 제안됐다. 이러한 흐름은 수송부문 탈탄소화의 국제적 추세를 반영하며, 국내 탄소중립 전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개개인의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자전거 이용 활성화가 이를 해소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라도 자전거 친화도시 조성이 어렵다는 ‘안돼니즘’을 나열하기보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자전거 전용도로와 주차장 등 인프라를 확충해 더욱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윤제용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